금호산업 매각, 경제논리로만 풀 수 없는 이유

중국발 쇼크의 ‘데자뷰’ 매각가 7천억 원대 탄력

금호산업 채권단이 매각을 둘러싸고 높은 가격을 받겠다는 시장논리에 집착, 매각가 합의에 실패하는 등 진통을 거듭하면서 지역 민심도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금호산업 채권단 22개 기관이 자리한 27일 회의에서는 7935억원(주당 4만5485원)이 최종 매각가격으로 제시됐지만 박 회장이 제시한 가격대로 더 낮춰야 한다는 주장과 더 높은 가격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충돌하면서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즉 빠른 매각을 위해 박삼구 회장이 제시한 6503억 원과 근접한 7000억 원 선이 적절하다는 시중은행 채권단과 8600억 원은 받아야 한다는 미래에셋이 물러서지 않으면서 매각작업이 막바지에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던 시중은행 채권단들은 최근 중국발 쇼크로 금융시장이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을 크게 우려하며 금액을 낮춰서라도 매각 적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팽배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이 7년 전 대우조선해양 매각에 실패하면서 최근 시가총액이 6천5백억 원 수준으로 당시의 10분의 1토막이 나면서 제2의 대우조선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는 아픈 데자뷰 현상을 걱정하는 것이다.

이번 금호산업 매각과정을 들여다보면 채권단을 대표하고 있는 산업은행이 소신 있게 교통정리를 하지 못하고 미래에셋을 비롯해 일부 강경파 채권단의 눈치에 너무 휘둘리면서 매각적업이 차일피일 늦어지고 있는 것도 비판 여론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이르면 다음 주 채권단 회의를 열어 매각 가격 도출을 재시도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일부에서는 “어떤 결론에 도달하든 후 폭풍을 염려해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무사안일주의의 전형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물론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원금을 회수하겠다는 미래에셋의 판단이 당연한 것인지, 현실을 너무 도외시한 잘못된 것인지는 시장에서 판단할 일이다.

매각에 성공하면 성공한대로, 실패하면 실패한대로 시장논리로 풀면 될 일이지 지역정서는 경제논리의 적용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지역민심을 앞세운 윤장현 광주시장과 이낙연 전남지사의 “금호산업은 광주의 자존심으로 합리적인 결정을 바란다”는 엄호를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다. 정치권이 지역민심을 읽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광주경영자총협회와 광주전남지역 시민단체, 성시화운동본부 등 종교계까지 나서 “금호산업 채권단의 과욕이 매각 자체를 무산시킬까 우려 된다”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지역정서가 금호를 지원하고 있는 것도 외면 할 수만은 없다.

이들은 “금호산업이 이대로 주인을 잃고 다시 시장에 매물로 나올 경우, 과연 새 인수 후보를 제대로 구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고 지적했다.

금호삼업을 시장논리로만 사들인다고 하면 삼성이나 현대, SK 등 국내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1조원을 준다고 한들 돈이 없어 금호를 못 사들일까.

지난 봄 호반건설이 금호산업을 사겠다며 입찰에 뛰어 들었을 때 한 재계 인사는 “재계에는 재계의 법도와 상도의가 있다”는 말로 금호는 금호 원주인이 가져가는 것이 이치에 맞다는 표현을 에둘러 한바 있다.

지역 경제계는 “지역사회는 호남 유일의 대기업인 금호의 재도약을 오랫동안 염원해왔다”면서 “채권단이 재기에 나서려는 향토 기업의 발판을 뒤흔드는 것을 보며 자칫 금호그룹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지는 않을까 두려움마저 앞선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처럼 아직은 지역민심이 금호산업이 원주인인 금호그룹의 품으로 돌아가 재기하기를 바라는 쪽으로 쏠려있는 것도 금호 채권단에게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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