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과학의 총아 격인 의사와 초현실적인 존재로 여겨지는 퇴마사, 이 양극단의 특징을 잇는 독특한 캐릭터를 그는 어떻게 이해했을까. 최근 서울 삼청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김성균은 '운명'이라는 단어를 섞어가며 꽤나 설득력 있는 답변을 내놨다.
"대무당을 아버지로 둔 진명이라는 친구는 어릴 때부터 귀신을 봐 왔을 겁니다. 영화 속에서도 세상을 떠난 아내가 슬픈 눈빛을 하고는 그를 찾아오기도 하잖아요. 이게 그의 운명인 거죠. 지난 시간 동안 그러한 운명을 거부해 왔을 테고, 자기가 겪는 비현실적인 일들을 어떻게든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싶었을 겁니다. 그렇게 의사의 길로 들어섰겠죠. 그럼에도 자기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해를 입는 모습을 보면서 결국 자기 운명을 받아들이게 된 거겠죠."
운명이라는 표현은 배우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 김성균의 모습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 연극반 활동을 한 것이 인연이 돼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고 전했다.
"당시 다니던 교회에서 제가 쓴 성극 대본으로 함께 연습해 발표하고는 했는데 재밌는 거예요. 교회 집사님 중에 극단에 몸담으신 분이 계셨는데, 하루는 '극단에 들어가보지 않겠냐'고 물으시더군요. 그렇게 대구에 있는 한 기성 극단에 저를 데려가셨고, 선배들 물 따르는 일부터 시작했죠. (웃음)"
김성균은 이번 영화에서 감정을 억누르며 극의 흐름을 관조하는 듯한 연기를 한다. 전작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2),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 '살인의뢰' 등에서 익히 봐 온 발산하는 연기와는 사뭇 결이 다르다.
"생활비 걱정을 안하게 되고, 가족이 늘어나면서(그는 두 아들에 이어 최근 셋째로 딸을 얻었다) 많은 부분이 가정에 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일에 흥미를 갖고 더욱 열정적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 저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연기하겠다'는 열정만 있었죠. 지금은 때묻지 않았나 되돌아보고 있는 시기인 셈이죠"
▶ 원작 소설인 작가 신진오의 '무녀굴'은 읽었나.
= 안 봤다. 우리 영화는 각색이 많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감독님께서도 "굳이 소설을 참고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셔서 시나리오에 충실하려 애썼다.
▶ 셀 수 없이 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낸 제주 4·3 항쟁을 영화의 소재로 끌어들여 대물림되는 사회적 책임을 부각시킨 점이 눈길을 끈다.
= 솔직히 촬영을 하면서는 4·3 항쟁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완성된 영화를 보니 그 부분이 부각됐더라. 감독님의 과감성이 드러난 부분이다. 전작 '이웃사람'(2012) 때 함께하면서도 느낀 건데, 장르에 구애 받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극에 굉장히 잘 녹여내시는 이야기꾼이다.
▶ 이 영화의 핵심어를 꼽자면 '원혼'(분하고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넋)이 아닐까 싶다. 어떻게 다가오던가.
= 빙의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상을 봤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게 연기라면 천재 배우'라는 생각이 들더라. 결코 흉내낼 수 없는, 현실적이지 않은 음색의 목소리를 접하면서는 두려움이 일더라. 이러한 것을 아예 믿지 않을 수는 없는 것 같다. 제사를 모시는 것처럼 우리네 정서상 안 믿으면 화를 당할 것 같은 두려움 같은 게 있지 않나. 자기 한몸이야 상관 없지만, 자식 세대에게까지 그러한 액운이 대물림되지 않을까라는 공포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 첫 공포영화인데, 장르적인 매력을 느꼈는지.
= 찍으면서 관객들을 상대로 게임을 하는 기분이었다. 친한 사람을 놀래키려 숨어 있으면서 상대의 반응을 상상하고 즐거워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실제 촬영 현장은 꾸러기들의 모임처럼 무척 즐거웠다.
= 분명 책임감 같은 것이 생기더라. 연기적인 부분이든, 현장에서의 모습이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 말이다. 주연을 맡으면서 인격적으로 훨씬 성숙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흥행 스코어에 대한 강박도 뒤따른다. (웃음)
▶ '군도: 민란의 시대'(2014)에서는 백성 장씨 역으로 나왔을 만큼, 배역의 크고 작음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이다.
= 좋아하는 사람들과 현장에서 만나 재밌게 일하고 싶은 마음이 제일 크다. 군도 때는 저만 빠지면 속상할 것 같아서 감독님을 찾아가 "뭐 하나 달라"고 해서 맞은 역이다. 그렇게 재밌게 찍은 작품이 또 잘 나오더라. 굳이 연기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있지는 않다. 맡은 캐릭터를 잘 소화하고 싶을 뿐이다. 자기만의 색깔을 갖고 연기하시는 분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그래서 저만의 독특한 캐릭터가 있었으면 하는 욕심도 있다.
▶ 배우 생활을 하면서 슬럼프도 겪었을 텐데.
= 제 연기가 진짜가 아닌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 연극은 초반 10, 20분 동안 땀을 흘리고 나면 상연시간 동안 그 세상에서 살아내 버리는 집중력 같은 게 있다. 반면 영화는 3, 4개월을 찍으면서 그 캐릭터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부담이 있다.
그러다보니 제 경우 현실에서 셋째 아이도 얻고 했는데, 촬영 현장에서는 또 다른 삶을 살면서 '가짜로 연기하는 건 아닌가'라는 반성을 하게 된다. 많은 생각을 했다. 이러한 고민의 시간을 보낸 뒤에는 더욱 발전해 있어야 할 것이다. 제 스스로 잘 풀어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