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때려도 조폭 아빠는 칭찬…가출 청소년엔 죄가 없다

[신림동 아이들, 좌절 그리고 희망 ⑤] 신림동서 희망을 틔워라! - 이들은 '비행' 청소년이 아니다

서울 신림동에 첫 발을 내딛은 14살 아이들은 20살이 돼도 떠나지 못한다. 처음 신림동에 오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거의 같다. 돈이 없어 범죄를 저지르고, 전과가 더해지면서 아이들은 사기꾼·브로커로 전락한다. CBS노컷뉴스는 가출 청소년의 대표적 집결지인 '신림동' 심층취재를 통해, 거리의 아이들이 느끼는 좌절과 그 안의 희망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CBS노컷뉴스 연속기획 [신림동 아이들, 좌절 그리고 희망]

①"칼 휘두르던 아빠 피해"...신림동 라이프의 시작
②조건만남 브로커, 인터넷사기범…거리의 아이들에겐 '직업'이 있다
③"청소년 기간 한 살만 늘려줬으면…" 어른이 된 신림동 아이들
④'자퇴'와 함께 사라지다…울타리 밖으로 사라진 아이들
⑤신림동서 희망을 틔워라! - 이들은 '비행' 청소년이 아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봉천교에 나와 있는 청소년 이동식 쉼터 버스. 청소년들이 이동식 쉼터를 이용하고 있다.
지난 4일 서울 강동구 한빛대안학교. '몸짱 동아리' 담당 자원봉사자 강성영(25)씨 주위로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우와! 팔 장난 아니다. 선생님처럼 근육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신학대에서 청소년지도학을 복수전공하고 있는 강씨는 한빛대안학교 자원봉사자다. 학교 밖 청소년들을 발굴해 보호하고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도시형 대안학교인 이곳에서 강씨는 지난 6월부터 아이들에게 상담과 체육 활동, 검정고시 공부 등을 도와주고 있다.


강씨가 가르치는 검정고시반 아이들은 모두 절도 등 범죄를 저질러 보호관찰을 받고 있는 아이들이다. 그러나 강씨는 아이들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는다. 그가 청소년 시절에 모두 겪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저도 보호관찰 받았던 소년범이었어요, 친구들 때리고 가출해서 몰려다니면서 슈퍼에서 먹을 것 훔치고 재판까지 받았죠."

휴대전화를 훔쳐 법원에서 보호관찰 처분을 받으면서 한빛대안학교 최연수 센터장과 인연을 맺은 게 강씨에게 삶의 전환점이 됐다.

서울 강동구 한빛대안학교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강성영(25)씨.
상담을 통해 '왜 이렇게 살까'라는 문제의식을 갖게 된 강씨는 선도부에 들어가 아이들을 때렸던 '힘'을 선도 활동에 쓰면서 문제아에서 칭찬받는 학생으로 조금씩 바뀌었다.

"고등학교 들어가서는 밤마다 거리에 나가 술취한 분들 집에 모셔다드리는 일을 했어요, 퍽치기, 소매치기로 오해 받은 적도 있지만 절 기억해주실 때는 정말 보람을 느꼈어요, 그 때 생각했죠. 나는 힘으로 남을 도와주는 사람이 돼야겠다."

대학에서 우연히 청소년 관련 수업을 들으며 '다 내 얘기다'라고 생각했다는 강씨는 "가출하고 비행하는 청소년들은 잘못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비행하는 애들은 다 가정에 문제가 있어요, 이건 애들 탓이 아니거든요, 제가 상담하는 친구 중 한 명은 아빠가 조폭인데 그 친구는 애를 때리고 와도 아빠가 칭찬한대요, 아무도 그 친구한테 지적하지 않아요."

◇ 가출이 죄? 아이를 밖으로 내모는 '환경'부터 바뀌어야

가출 청소년은 '불량'과 '비행'의 대명사였다. 소년법에서도 '정당한 이유 없이 가출하는 청소년'을 우범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가출 청소년 중 대부분은 열악한 가정 환경에서 '탈출'한 경우가 많았다.

학교 밖 청소년들을 발굴해 보호하고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도시형 대안학교인 한빛대안학교에서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공부를 하고 있다. (CBS노컷뉴스)
지난해 5월 여성가족부가 쉼터 입소자 89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가정폭력으로 가출한 청소년은 전체 입소자의 40%인 반면, 호기심으로 가출한 이는 6%에 그쳐 가출이 청소년의 일탈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가출이 청소년 개인의 문제가 아닌 만큼 집을 나오게 된 환경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청소년활동연구소 권일남 소장은 "정상적이지 않는 가정의 아이들을 집으로 보내기보다는 이들에게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소년의 가출을 우범 행위로 규정하고 있는 우리나라나 일본과 달리, 미국을 포함한 유럽 국가는 청소년 가출의 1차적 책임을 부모에게 묻는다. 가출 청소년을 발견했을 때도 청소년 한 명에 대한 문제 해결 보다는 가족 전체에 포괄적 지원을 제공한다.

권 소장은 "상담복지센터와 청소년 센터 등 지역사회 다른 기관들과 연계해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학교 밖 청소년이 되기 전에…울타리 안에 '대안'을 넣자

청소년들이 가출해 범죄로 빠져들기 전에 학교 안에 처음부터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자는 의견도 제기된다.

여성가족부는 매년 6만여명에 이르는 학업중단 청소년들을 위해 학교 밖 청소년지원센터를 올해까지 200개로 늘리기로 했다.

권 소장은 "정부의 학교 밖 지원센터 대책은 사후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며 "예방적 관점에서 교육과정 다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매년 6~7만명의 아이들이 학교 밖으로 나오고 있어요. 이는 학교 시스템 내 대책들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학교 밖 아이들을 위한 대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예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학교 안에다 넣어야 합니다, 이들이 울타리 밖으로 나오기 전 진로 찾기를 도와주거나 학업도 맞춤식으로 보완해준다면 학교 밖 아이들이 줄어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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