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국제시장>을 볼 때만큼 울었던 것 같다. 당연한 일이다. 우리 할아버지 세대가 일제하에서 조국의 독립을 찾기 위해 <암살>에 나온 것처럼 처절하게 싸웠다면, 아버지 세대는 <국제시장>처럼 죽을 고생을 하면서 중노동을 했으니.
영화 <암살>의 줄거리는 이렇다.
"조국이 사라진 후 23년이 지난 1933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의열단과 합동으로 일제에 노출되지 않은 청년 3명을 암살작전에 투입한다. 독립군 저격수인 육군상병 안옥윤, 신흥무관학교 출신의 속사포, 폭탄 전문가인 황덕삼이 그들이다. 김구 주석의 신임을 받고 있는 경무국장 염석진이 이들을 찾아 임무를 맡긴다. 그러나 한때 독립운동을 했던 염석진은 변절해 일본영사관에 정보를 넘기고 있는 밀정이었다. 암살단의 타깃은 조선주둔군 사령관과 대표적인 친일파 강인국이다. 한편, 거액의 의뢰를 받은 청부살인업자 하와이 피스톨이 암살단 3인조의 뒤를 쫒는다. 이렇게 해서 요인 암살을 둘러싸고 경성에서는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진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일제하 35년간 조국해방을 위해 총을 든 다양한 인물과 악질 친일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영화 <암살>을 연출한 최동훈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 실제 어떤 인물을 모델로 해서 영화를 만들었습니까?
= "특정 인물을 모델로 삼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내가 아는 역사적 지식을 근거로 비슷한 인물을 찾아보자.
이번에는 저격수 안옥윤을 살펴보자.
요인 암살을 위해 총을 들고 지붕을 뛰어다니는 여성 항일투사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이런 장면은 없다. 그래도 가장 비슷한 인물로 두 사람이 있다. 먼저 남자현 의사이다. 남자현 의사는 독립운동사상 유일하게 권총을 들고 중국에서 국내로 잠입한 여성이다. 남자현은 동지 박청산, 이청수와 함께 1926년 4월 만주의 지린성을 출발해 경성에 잠입했다.
다시 만주로 돌아온 남자현은 이에 굴하지 않고 이번에는 괴뢰 만주국의 최고 실세인 무토 노부요시 전권대사를 죽인다는 계획을 세웠다. 1933년 3월 1일 신경(지금의 장춘)에서 열리는 만주국 수립 1주년 행사 때 권총과 폭탄을 이용해 노부요시 일당을 몰살시키기로 했다. 그러나 미리 접선했던 중국인들로부터 무기가 든 과일상자를 받으러 갔다가 정보를 탐지한 일본경찰에게 검거된다.
또 하나의 여성 독립투사가 있다. 바로 이화림이다.
오빠들을 따라 독립운동에 투신하기 위해 상하이에 온 이화림은 김구 주석 산하의 결사대 '한인애국단'에 가입한다. 그녀는 이 조직에서 무술과 사격을 배워 일본 밀정들을 처치하는 일을 맡는다. 이봉창 의사가 일왕을 죽이기 위해 도쿄로 떠날 때는 밤을 새워 폭탄을 담고 갈 특제 '훈도시'(일본의 성인 남성이 입는 전통 속옷)를 만든다. 이봉창은 그 속에 수류탄 2개를 숨긴 채 일본으로 향했다.
윤봉길 의사가 홍커우 공원에서 거사할 때는 둘이서 부부인 것처럼 가장하고 사전답사를 같이 다니고, 거사 당일 식장 입구까지 동행한다. 그러나 이화림은 폭탄 테러로는 독립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하고 조선의용대에 합류해 총을 들고 무장투쟁을 벌인다. 그녀는 부녀대 부대장으로 여성 독립군을 이끌고 태항산 일대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벌인다.
그러면 기관단총과 폭탄으로 결혼식장을 쑥밭으로 만드는 '속사포'는 실제 어느 독립투사와 유사할까?
1923년 1월 초 중국에 있는 의열단은 일제의 주요 건물을 파괴하라는 명령과 함께 김상옥을 경성에 파견했다. 그는 먼저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잠적했다. 놀란 일본경찰은 수사망을 좁혀 1월 17일 새벽 5시 경 삼판통(지금의 후암동)에 은신해 있는 김상옥을 덥쳤다. 그러나 김상옥은 쌍권총으로 종로서 형사부장인 다무라를 사살했다. 이어 우마세 경부와 우메다 경부 등 여러 명에게 중상을 입히고 눈 덮힌 남산으로 사라졌다.
5일 후 효제동 주택가에 김상옥이 은신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일경은 무장순사 1,000여 명을 동원해 네겹으로 포위했다. 여기서 김상옥은 2시간 동안 권총 2자루를 들고 시가전을 벌이다 많은 일경을 사살한 후 총알이 떨어지자 모젤(마우저 C96) 7연발 권총을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면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은 인물 민족반역자 '염석진'은 누구의 모델로 봐야 할까?
이승만 정권이 와해한 반민특위에서 유일하게 사형선고와 무기징역을 받은 두 인물이 있다. 물론 일본경찰의 간부 출신이다. 바로 김덕기와 김태석이다. 이들은 일제의 주구로 일하면서 '고문왕'이란 별명을 얻었다.
자기 손을 거쳐 감옥에 보낸 독립운동가가 무려 1,000명에 달하고, 그 가운데 100명을 사형대에 보냈다고 한다. 이 인물은 최초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6.25전쟁 직전 감형으로 풀려났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에서처럼 독립투사의 손에 처단되지 않고 석방 직후 정릉 근방의 산에 올라갔다가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무기징역을 받은 김태석은 강우규 의사를 체포해 사형장으로 보낸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체포해 악독한 고문을 자행한 것으로 악명을 떨쳤다. 이 인물도 재심청구 끝에 감형되어 1950년 봄 전쟁 직전 석방됐으나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하다. 영화처럼 의열단 손에 처단됐다는 설과 인민군에게 붙잡혀 맞아죽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반민특위의 해체가 두고두고 역사에 해악을 끼친 셈이다. 이런 인물들을 백주에 돌아다니게 했으니.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은 대사가 있다. 청부살인업자 '하와이 피스톨'이 저격수 안옥윤에게 묻는다.
"매국노 몇 명 죽인다고 독립이 되나?"
"알려줘야지… 우리는 끝까지 싸우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