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여운형을 ‘조선의 자주적 독립과 해방,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서 싸웠던 진보적 민족주의자’라고 말한다. 그는 필요에 따라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까지 넘나들며, 적도에서도 거침없이 조선 독립을 요구하고 싸웠다. 광복 이후엔 좌우 합작을 위해 누구보다 힘쓴 인물이었다.
하지만 목표 지향적인 여운형의 대담한 행보가 훗날 그를 기회주의자, 친일파라는 오명을 갖게 만들었다. 이 책에서는 시대를 앞서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던 독립운동가 여운형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여운형의 종잡을 수 없는 행보는 단 한 가지로 귀결된다. 바로 일제에 짓밟힌 조국과 민족의 독립과 해방 그리고 통일정부 수립. 여운형에게 타협은 있어도 원칙을 깨는 일은 없었다.
여러 집단을 넘나들었지만 그는 친일파도 중화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친소주의자도 아니었다. 오직 궁극적인 목표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것뿐이다. 그래서 이런 그를 저자는 단호하게 ‘진보적 민족주의자’였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책 『몽양 여운형 평전』에서는 이렇게 이념과 사상보다 ‘조선’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험난한 길을 걸었던 여운형을 만날 수 있다.
베를린 올림픽 당시의 일장기 말소 사건. 아주 유명한 사건이다. 이를 『동아일보』보다 먼저 시행한 것이 바로 『조선중앙일보』, 여운형이 사장으로 있을 당시였다.
사건이 터진 뒤 그는 일제와 타협을 거부하고 신문사를 폐간시키는 길을 택한다. 일제강점기였던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참으로 담대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그는 늘 비굴함이 없이 당당했다.
가장 먼저 근대적인 정당을 창당하고 가장 먼저 3·1혁명 추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앞장서기도 했다. 광복 직후엔 ‘조선을 대표하는 정치인’ 중 첫째로 꼽혀, 미군정의 극비 보고서에는 “남쪽에서 대통령 선거를 하면 국내파 여운형이 당선”된다는 내용이 들어 있을 정도였다.
일부 사람들이 폄훼하는 그의 이념을 넘나드는 행보, 그중에 특히나 일본의 초청으로 적도인 일본에 건너가 일본 정부와 언론, 학계 인사들을 상대로 거침없는 열변을 토하며 당당하게 조선의 독립을 요구했던 그를 보면 현시대에도 여운형과 같은 굳은 신념과 담대함을 가진 지도자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에 그의 이른 죽음이 더욱 안타까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