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한국전력 해킹해 계약해지…재입찰하면 '이상무?'

한전 "해킹으로 인한 입찰제한 사유 없어" "법적 검토중"

자료사진
한국전력 입찰·계약 시스템을 해킹해 수천억원 상당의 불법 계약을 따낸 전기공사 업체 대표 등이 무더기로 구속기소된 가운데, 일부 업체가 한전 재입찰에 다시 응시해 1순위에 오르면서 전기공사 업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입찰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국민안전과 직결된 전기공사 부실을 초래했다는 이유로 검찰이 업체 대표까지 구속했지만 한전은 당장 입찰제한 조치를 취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 검찰, 한전 입찰시스템 해킹한 업자 '철퇴'

광주지방검찰청은 올해 5월 한전KDN 파견업체 전현직 직원 4명과 브로커 2명, 전기공사업체 대표 등 23명을 무더기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구속된 전기공사 업체 대표들은 지역 일부 구획 전체에 시행되는 고압선과 전봇대 설치, 전기배선 공사를 따내기 위해 한전KDN 파견업체 전현직 직원, 브로커 등과 결탁해 한전 입찰시스템을 외부에서 해킹했다.

내부 공모자인 입찰조작책들이 불법 악성코드를 한전 내부망에 설치하고 낙찰 하한가를 조작한 정보를 넘기면 전기공사업자들은 수억원의 대가를 지불한 뒤 공사계약금액의 20-30%를 챙기고 불법 하도급에 넘긴 것.


해당 공사는 수년동안 안정적으로 공사를 진행할 수 있고 수주액도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에 달해 그만큼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불법 해킹에 연루된 전기업자들은 광주는 물론 인천, 대구, 경기, 충남 등 전국적으로 분포돼 있었다.

검찰 관계자는 "해킹에 의한 입찰비리로 기술력이 검증되고 인프라를 갖춘 전문 전기공사업체들은 대거 탈락했다"며 "대신 부실업체들이 낙찰받아 시공하거나 불법 하도급 공사를 진행해 국민 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줬다"고 말했다.

검찰은 수사 성과를 발표하면서 한전 등에 통보해 입찰시스템을 직접 관리하고 불법낙찰 업체에 대한 계약취소, 입찰 자격제한 등 후속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한국전력 사옥
◇ 대표가 구속된 업체 재입찰 성공

한국전력은 검찰 수사결과 발표 직후인 지난 5월 26일 해킹을 통해 불법 낙찰을 받은 계약 45건(공사진행 시점 총액 700억원)을 모두 해지했다.

이후 한전은 지난달 24일 계약이 해지된 공사구간에 대한 재입찰을 공고했다.

하지만 해킹범죄로 구속기소된 대표가 있는 경기도 소재 K업체가 재입찰에 응시해 1순위 낙찰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해당 업체 대표는 최근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 등 유죄를 선고받았다.

지난해 말 2년간 전기공사를 할 수 있는 계약을 따내 올해 5월까지 18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 K업체는 해킹 범죄를 저지르면서 계약이 무효화됐지만 재입찰에 낙찰되면 50억원 규모의 나머지 공사를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사상초유의 한국전력 해킹으로 인한 재입찰 공고. 검찰이 구속기소한 대표가 속한 업체가 재입찰에 다시 응해 1순위 낙찰이 유력시되고 있다.
한국전기공사협회 경기도회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전기공사협회 정모씨는 "해킹을 통해 이미 18억원 어치 공사를 진행한 업체가 불법낙찰로 판명돼 계약이 해지됐는데 이익을 환수하기는 커녕 재입찰 기회까지 줬다"며 "한전이 불법 비리업체를 적극 비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씨는 또 "한전이 K업체에 계약해지 조치를 취했다면 불법 이득을 환수하거나 손해배상 소송을 할 수 있지만 어쩐 일인지 단순히 계약을 무효화했다"며 "결국 한전이 면죄부와 함께 재입찰 자격까지 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국가계약법)' 76조 1항은 '경쟁입찰, 계약체결 또는 이행과정에서 입찰가격을 협정하거나 특정인 낙찰을 위해 담합한 자', '입찰 또는 계약에 관한 서류를 위조.변조하거나 부정하게 행사한 자', '고의로 무효의 입찰을 한 자', '관계공무원에게 뇌물을 준 자' 등을 부정당업자로 규정하고 1개월 이상 2년 이하의 범위에서 입찰참가자격을 제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기업, 준정부기관 계약 사무규칙' 15조 역시 '국가계약법 76조 1항'을 근거로 해당 부정당업자에 대해 입찰참가자격을 제한한다.

한전은 지난달 재입찰 공고를 내면서 '공기업, 준정부기관 계약 사무규칙' 15조를 따른다고 공시했다.

전기공사협회는 "'고의로 무효의 입찰을 한 자'에 K업체를 적용할 수 없고 법령이 해킹과 같은 첨단범죄를 일일이 규정하고 있지 않아 처벌할 수 없다는 게 한전의 판단"이라며 "죄는 알지만 처벌하지 못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국전력 측은 "해당 업체가 재입찰에 들어온 것은 맞다"며 "내부 법률팀에서 재입찰 여부를 어떻게 처리할지 현재 법률검토 중"이라고 해명했다

한전측은 또 "재입찰 공고 당시 1심 판결이 나오지 않았다, (입찰참가제한 조치는) 상식적으로 맞지만 법리해석 부분을 따져봐야 한다"며 "신중하게 법적 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경기도뿐 아니라 광주에서도 해킹에 연루돼 대표가 구속된 업체가 이름을 바꿔 재입찰하는 등 비슷한 사례가 속속 발생하고 있다.

검찰이 수천억원대 한국전력 입찰시스템 해킹 범죄를 대대적으로 척결했지만 처벌받은 업체 일부가 재입찰에 성공하면서 법적 처벌 실효성을 놓고 논란이 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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