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각국 주재 대사 및 총영사 등 재외공관장 170여명과 일일이 악수하면서 던진 말은 “우리와 그쪽 경제교류는 뭐가 있으며 어떤가요”였다.
모든 공관장들은 거의 한 명도 예외없이 박 대통령으로부터 동일한 질문을 받았다.
재외공관장들을 접견하는 만큼 주재국과의 외교현안에 대한 질문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대통령의 질문은 오직 경제교류 뿐이었다고 한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거나 전화 통화를 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경제라는 단어만 들어있는 같다고 말한다.
역대 대통령들과는 달리 좀처럼 독대를 하지 않는 박 대통령의 특성상 주요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직접적으로 파악할 수는 없으나 청와대 관계자들이나 직간접으로 대통령과 접촉하는 주요 인사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주요 관심사는 경제로 집약된다.
친박계의 한 핵심 의원은 “지난해 말부터 그랬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대통령의 경제 챙기기가 더 심화되는 것 같다”면서 “경제 얘기 밖에 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여권의 한 고위 관계자도 ‘대통령의 관심이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언론은 정치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지만 그건 완전히 잘못된 것이며 실제로 대통령의 국정은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에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여당은 정치를 하는 정당이니 만큼 청와대가 정치를 하기를 바랄 수 있으나 청와대는 나라를 어떻게 하면 잘 되게 할 수 있는가를 매일 고민하는 곳”이라며 “대통령께서 경제 살리기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계시기 때문에 다른 사안을 갖고 대화를 나누기조차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여당 의원은 “박 대통령이 국정원 해킹 의혹 사건에 대해 보고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지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경제 상황이 녹록치 않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최근 국회의원 출신 장관들의 딴 생각(내년 총선 출마)을 세게 잡도리 하고 나선 것도 지금은 경제 살리기에 매진할 때라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1일 국무회의에서 "공공 노동 금융 교육 등 4대 구조개혁의 추진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여야 정치권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국정원의 민간 사찰 의혹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원유철 원내대표와 김정훈 정책위의장의 취임을 축하하는 자리였으나 실제로는 김무성 대표와 원 원내대표에게 국회에 계류중인 경제관련 법안과 노동개혁을 비롯한 4대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자리였다.
지난 16일 박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의 청와대 회동 이후 여당 지도부가 또 다시 청와대, 박 대통령의 의도에 걸려들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박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 간의 20분 독대에서도 경제 살리기 문제만을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사자인 김무성 대표는 “대통령과 단 둘이 나눈 대화는 공개하지 않는 것은 도리"라면서 그 어떤 물음에도 손사래를 쳤다.
그렇지만 ‘대통령의 관심이 온통 경제라고 하는데 경제 살리기에 대한 얘기간 나올 수밖에 없지 않았느냐’고 묻자 “알면서 왜 묻노(묻냐의 경상도 사투리)”라고 대꾸했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김 대표에게 경제 관련 법안의 조속한 통과와 노동개혁을 앞장서 추진할 것을 독려한 것이 확실시 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김무성 대표의 정치개혁 슬로건인 오픈프라이머리에 대한 대화가 오가지 않았겠느냐는 추측도 있었으나 오픈프라이머리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고 한다. 오픈프라이머리는 공천과 관련된 문제로 논의하기 시작하면 대립할 수밖에 없고 현재로선 현실화될지도 불투명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김 대표는 청와대 회동 다음 날인 지난 17일 “노동개혁을 어떻게든 추진하겠다”고 말했고 실제로 2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노동개혁에 팔을 걷어붙이겠다고 다짐했다.
김 대표는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지만 표를 잃을 각오로 노동개혁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 회동에서 “우리 김무성 대표님”이라고 애정과 존경이 담긴 호칭을 한 것은 유승민 사퇴 파동을 무난히 마무리 지은데 대한 답례 성격이자 앞으로 노동개혁 등을 잘 추진해 달라는 당부의 메시지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경제가 살아나지 않고 있는 이유가 4대 개혁이 지지부진하고 국회가 정쟁에 휩싸여 국민복리나 민생과 멀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대통령의 이런 시각에 대한 여의도의 입장은 크게 다르지만 일단 여당을 경제 살리기 프레임에 묶어두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경제 살리기가 여당 장악의 ‘전가의 보도’가 된 듯하다.
여당 의원들이 대통령의 ‘경제 살린다’는 명분을 거부하거나 반기를 들 수도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만이 경제에 올인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아니다. 역대 대통령들이 대부분 그런 전철을 밟았다.
IMF 외환위기 직후 집권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글로벌 경제위기를 겪은 이명박 전 대통령은 특히 경제, 경제를 외치고 다녔다.
청와대 관저나 집무실에서 수석들로부터 보고를 받을 때 경제수석으로 하여금 맨 먼저 보고를 하라고 할 정도로 경제 챙기기에 혈안이 됐다고 한다.
어느 대통령이나 청와대에 들어가는 순간 정치인에서 경제인으로 변신하게 되고 그것만이 업적을 남기는 길이라고 확신하곤 했다.
그렇지만 경제 살리기에 성공한 대통령은 별로 없다는 게 국민의 일반적인 평가다.
747을 외치며 집권에 성공한 이명박 대통령은 세계경제 위기를 적절히 대처했다는 자체 평가가 있으나 747공약의 실천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졌으며 대선 구호가 ‘대국민 사기극’이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경제를 움직일 수 있는 대통령의 권한이 상당 부분 1등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무한경쟁의 시장과 민간 부분, 특히 재벌에게로 넘어가버려 경제 살리기 성과와 연결될 ‘레버리지’가 별로 없다.
강봉균 전 경제부총리는 “민간 영역과 시장, 국민, 정치권의 협조 없이는 경제를 살린다는 것이 정말이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 전면에 서서 경제 주체들과 4대 개혁 당사자들을 만나 설득도 하고 국민의 총의를 만들어도 될듯 말듯 한데, 당과 정치권에 개혁 과제를 던져만 놓고 해내라고 독려만 하면 성과가 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정부의 경제 살리기가 3% 경제성장률 달성에 집착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