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서울 '길고양이'와 소설 '검은 고양이'

(자료사진=스마트이미지)
애드거 앨런 포의 소설 <검은 고양이>가 떠올랐던 휴일이다.

소설 속 주인공 '나'는 동물을 사랑하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던 동물애호가에서 잔혹한 학대자요, 살해자로 변신한다. 기르던 고양이의 한쪽 눈을 칼로 도려내고 목을 매달아 죽이는 끔찍한 일을 저지른다. 충동에 휩싸여 고양이를 살해한 '나'는 시간이 흐르자 기르던 고양이를 그리워하며 양가감정(兩價感情·두 가지의 상호 대립되거나 상호 모순되는 감정이 공존하는 상태)에 괴로워한다.

결국 자신이 죽인 것과 흡사하게 생긴 고양이를 데려와 기르지만 어느 날 발작적으로 고양이를 향해 도끼를 휘두른다. 고양이는 도끼를 피해 달아났지만 곁에 있던 아내가 그 도끼에 찍혀 즉사하고 만다. '나'는 살해된 아내의 사체를 공사 중이던 벽에 넣고 시멘트로 발라 위장한다. 그러나 현장 감식을 나온 경찰은 콘크리트 벽 속에서 울려나오는 고양이 소리를 듣게 되면서 공포와 광기로 점철된 끔찍한 살해 현장이 드러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최근 서울시내 마포구와 서대문구 일대에서 길고양이가 잇달아 의문사 한다는 뉴스를 보면서 포의 소설 <검은 고양이>가 스쳐갔다. 소설 속 주인공처럼 누군가가 카페와 식당이 즐비한 이 일대 골목길에서 길고양이를 살해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 실체가 궁금했다.


상업적인 목적이나 실험내지 연구를 위해 길고양이를 살해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사체가 훼손됐거나 사라지지 않은 채 입 주위에 흰 거품을 물고 쓰러져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부 사람들이 자신의 편리를 위해 계획적으로 혹은 충동적인 감정에 의해 행해지는 학대 내지는 살해일 가능성이 높다.

(사진=스마트뉴스팀)
길고양이를 학대하는 사람들의 경우 집 앞 골목이 더러워진다거나, 손님들이 던져주는 음식물에서 악취가 발생한다거나, 밤에 들려오는 고양이의 괴성이 듣기 싫어서가 대부분일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주위의 눈을 피해(자신이 동물학대자라는 대중의 지목을 피하려고) 길고양이를 해코지 하는 것을 넘어 죽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들 동물학대자들의 행위는 이웃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실체를 알기가 어렵다. 우리 주변의 선량한 이웃 가운데 누군가가 동물 학대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 뿐이다. '흉흉한 소문'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반대로 길고양이들이 우리 주변에서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먹이를 주며 보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비를 털어 사료를 구매한 뒤 매일 정해진 시간에 고양이가 오가는 길목을 찾아가 먹이를 놓아준다. 이들 동물보호자들 역시 주위의 눈을 피해 이런 일들을 숨바꼭질하듯 한다. 그들 가운데는 먹이를 주다가 이웃 주민에게 욕을 먹거나 핀잔을 듣는 일도 허다하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는다. 외로운데다가 집마저 없고 끼니때마다 먹이를 챙겨주는 주인조차 없는 길고양이에 대한 연민과 배려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은 길고양이를 놓고도 두 종류로 나뉘어 있다. 보호하려는 사람들과 쫓아내려는 사람들이다. 두 부류의 사람들 모두 정당성과 합리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누가 옳고 그른가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는 쉽지 않다. 다만 인간이라고 해서 힘없는 동물을 제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논리는 범죄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동물들의 최소한의 권리를 인정해 주고 있다. 동물도 사람처럼 감정이 존재하고 사랑과 고통을 느낄 수 있지만 사람처럼 말을 못하는 약한 존재일 뿐이다.

인간과 동물 사이에 맺어진 기나긴 공존공생의 역사도 놓칠 수 없다. 노아는 대홍수가 닥치기 전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동물을 방주로 초대했다. 지구가 인간이라는 한 종족만으로도 잘 살 수 있는 공간이었다면 노아는 굳이 동물들을 초대해서 긴 홍수기를 견디며 땅이 마르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골목길 담장 위에서 낮잠에 빠진 한 마리 길고양이나, 베란다에 내놓은 활짝 핀 제라늄 꽃이나,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한 쌍의 연인이 평화로운 한 폭의 그림이 되는 세상이 그립다.

마하트마 간디는 "한 나라의 위대성과 도덕성은 동물들을 판단하는 태도로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한 국가의 위대성과 도덕성을 동물을 대하는 태도에서 엿볼 수 있다니…. 길고양이가 의문사 당하는 서울시내 한 모서리에 사는 나로서는 마하트마 간디의 성찰이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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