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원내대표가 취할 수 있는 것은 '직책 고수'이거나 '자진 사퇴' 뿐이다. 강제 사퇴는 유 원내대표의 선택범위 밖에 있는 데다, 행위주체가 돼야 하는 친박계가 이를 강행하기도 어렵다. 친박계는 지난 2월의 원내대표 경선, 지난해 7월의 전당대회에서 '수적 열세'를 확인한 바 있다.
원내대표직 고수 가능성은 비박계의 수적 우세를 기반으로 거론되고 있다. 의원총회를 열어 확실한 재신임을 얻는 방식이다. "의원들 총의로 앉은 자리인 만큼, 물러나는 것도 의원들 총의에 따라야 한다"는 게 유 원내대표 측의 신념이다.
원내대표 거취 관련 의원총회를 추진하던 친박계가 '의총 소집요구서' 제출을 기피하고 있는 것도 자신들이 머릿수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다만 이 경우 유 원내대표가 대통령과 정면대결을 벌이는 것으로 인식될 소지가 있다. 유 원내대표는 정적들로부터 '불경스러운 인사'로 낙인찍힐 가능성이 있고, 당·청 관계도 돌이키기 어려운 지경에 이를 수 있다.
유 원내대표가 자진 사퇴를 선택한다면 결국 실력 행사를 포기하는 경우다. 당·청 및 계파 간 갈등을 회피하기 위해 행해질 수 있다. 그동안 친박계뿐 아니라 김태호·이인제 최고위원 등 비친박 최고위원도 사퇴를 종용해왔고, 김 대표 역시 '명예로운 선택'을 거론하면서 은근히 유 원내대표에 사퇴를 압박해왔다.
이 경우 사퇴 시점은 다수 안이 있을 수 있다. 당장 사퇴를 선언할 수도 있으나 '명예'를 회복하기에는 불충분하다. 이런 가운데 '국회법 개정안 재의' 또는 '추가경정예산안 처리'가 적절한 사퇴 시점이라는 당내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국회법 개정안 재의 시점 사퇴란, 청와대의 진노를 유발한 국회법 개정안을 부결-폐기로 마무리한 뒤 유 원내대표가 사퇴로 책임지라는 취지다. 여당 지도부는 개정안 재의가 상정되는 다음 달 6일 본회의에 참석하기로 결정했다. 이같은 지도부 방침이 유 원내대표 사퇴 시점을 그때로 맞추려는 수순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친박계 일각에서는 "그때까지는 두고 보겠지만 그때도 사퇴하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며 엄포를 놓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추경예산안 처리 뒤 사퇴라는 시나리오는 추경 처리가 단기간에 마무리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유 원내대표의 임기를 좀 더 늘릴 수도 있다. 그러나 유 원내대표의 '축출'을 목적으로 한다는 데에는 차이가 없다.
어떤 경우로 유 원내대표가 자진 사퇴를 하든, 새누리당은 청와대의 심기에 따라 움직이는 집권여당으로 비난받을 소지가 있다. 야당의 국정 비협조 분위기도 고조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유 원내대표의 한 측근은 "원내대표는 여전히 모든 가능성에 대해 심사숙고하고 있을 뿐, 어떤 방향을 정해놓고 해법을 고민하고 있지 않다"면서 "친박계 일각에서 '자진사퇴 시나리오'를 퍼트리고 있는 줄 아는데, 그게 당을 위한 길이라고 믿는지 궁금하다. 우리 쪽에서는 자진 사퇴를 정한 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