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박근혜 대통령의 선제공격에서 시작된 여권 내부 갈등은 점입가경이다.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 운운하면서 현직 여당 원내대표가 자기정치를 한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하자 친박계는 앞다투어 유승민 끌어내리기에 혈안이 됐다.
친박계의 인식도 대통령과 똑같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취임 이후 '증세없는 복지 반대', '고고도사일방어체제 도입', '법인세 인상론' 등을 펴며 청와대 또는 여당과 동떨어진 주장을 내놓으며 시종 개인 정치를 해왔다는 것이다.
여권 내부가 쑥대밭이 되다시피 하는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도 당·청 간 소통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김무성 대표 측은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거나 청와대와 문제를 풀려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형편이다.
김 대표의 한 측근 인사는 30일 CBS와의 통화에서 "이번 사단이 공무원연금 개혁과정에서 야당 요구를 들어주다가 생긴 일이어서 대통령과 당 지도부가 더 이상 만날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장 선상에서 "대통령이 마음을 돌리지 않는 한 방법이 없지 않느냐"며 시기 문제일뿐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의도가 유승민 찍어내기 내지는 새누리당 지도부 교체로 알려진 이상 여권내 누구도 대통령 권위에 감히 도전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승민 원내대표가 일반의 예상을 깨고 대통령과 친박계의 공세를 강하게 버텨내자 여당 내부에서는 예기치 못한 대통령의 공세, 노기에 거친 언사를 동원한 유승민 찍어내기 시도에 덧칠된 '박근혜 이미지'를 벗겨내고 현실을 냉정하게 보려는 시각이 대두되고 있다.
그것은 당내 역학관계이고 힘의 논리다. 지난 주말 금방이라도 유승민을 몰아낼 것 같은 기세를 보이던 친박계의 기세는 눈에 띠게 약해졌다. 버티는 유승민을 끌어내릴 아무런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
당헌당규에도 없고 의원총회의 세 대결도 절대 불리하다. 친박계는 의원수를 다 합쳐도 30여명으로 전체 새누리당 의석수 160석의 20%에 불과하다.
현재로써는 유승민 원내대표가 자진사퇴할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국회법 재의결이 예정된 '6일 D-Day설'이 흘러나오고 있지만 가능성 측면에서 낮다. 친박계가 아무런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명백해졌고 이슈의 중심에 서며 대권주자 지지율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서둘러 전면에서 퇴장할 이유가 없다는 분석이다.
유승민 원내대표와 가까운 K초선 의원은 30일 CBS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오는 6일 유승민 원내대표가 사퇴할 가능성은 0%다.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김무성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과 만나 중재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 원내대표의 의중이 어디에 있는지 읽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능성은 희박하다. 박 대통령이 지금까지 보여준 행보로 볼 때 소통보다는 정치적 힘으로 측근이나 여당 정치인들을 제어해왔기 때문이다. 지난달 25일 김무성 대표가 의원총회 말미에서 한 말은 여권 수뇌부 내 소통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당시 김 대표는 "나도 (청와대와)소통하고 싶다. 공무원연금법 처리 당시 김기춘 실장이 전화를 받지 않아 종일 시간을 비워둘 테니 만나자고 (청와대 비서진에) 전했더니, 만나는 게 적절치 않다는 말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여권 내 소통통로가 꽉 막힌 상황에서 지속되는 당 주류와 친박계의 반목은 고스란히 지지층 불만으로 이어지게 된다. 정치적 충돌이 여론의 관심도를 높여 우선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올라갔지만, 이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지율은 동반 추락할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중인 노동, 금융, 공공 등 4대분야 개혁을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의회의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변화된 당의 현실을 도외시한 채 지도부를 교체하려는 시도는 당을 적으로 돌리는 하책이다.
대통령과 친박계는 하루라도 빨리 '권력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과 새누리당 내부에서 친박계가 소수파로 전락했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