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한 쪽방촌에서 파지를 주워 팔며 살아온 서정열(90) 할아버지.
61년 만에 6·25참전용사로 인정받은 서 할아버지의 ‘국가유공자 되기’는 그가 치른 전투만큼이나 처절했다.
지난 1947년 입대해 6·25전쟁 중 경북 영덕전투와 육군 칠성부대 소속으로 강원도 고지전투에서 숱한 전과를 올렸지만, 국가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1954년 제대 후 국가유공자 제도를 알고선 육군본부와 병무청 등을 동분서주하며 웃옷을 까서 적탄에 입은 폐 관통상을 보여줘도, 머리에 박힌 포탄 파편 자국을 들이밀어도, 전투에 대한 생생한 증언까지 늘어놓아도 무용지물이었다.
서 할아버지의 병적기록표에는 그의 이름 대신 엉뚱하게 ‘김칠석’이라는 이름이 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1969년 전국민에게 주민등록번호가 부여되면서 신분증에는 원래의 이름을 올려놓을 수 있었지만, 병적까지 고쳐지지는 않았다.
그동안 국가유공자 등록은 본인이나 직계가족이 관련 기록을 갖고 보훈관서에 직접 신청한 뒤 심사받는 절차를 거쳐야 했는데 ‘서정열’이라는 이름으로는 ‘김칠석’의 병적증명서를 발급받을 수도, 이를 근거로 유공자로 인정받을 수도 없었다.
“‘그 김칠석이 나’라고 해도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아서 자다가도 분통이 터져 깨는 날이 많았다”는 서 할아버지는 역시나 자신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던 아들에게 편지 한통을 부탁해 명예를 회복했다.
아들의 편지를 접수한 국민권익위원회가 조사에 나섰고, 아직도 머릿속에 금속 파편이 존재하는 서 할아버지의 부상부위와 병적상 김칠석의 부상부위가 같다는 점이 X-ray 결과로 확인된 것이다.
또, 서 할아버지 아들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 보호자가 ‘김칠석’으로 기록된 점 등도 주장이 인정받게 된 근거가 되었다.
육군본부는 이를 바탕으로 한 국민권익위의 요청을 받아들여 병적기록부의 이름을 서정열로 수정했고, 서 할아버지는 이달부터 국가유공자로 인정돼 보상금을 받게 됐다.
간단한 검사와 서류 확인으로 될 일에 60년 넘게 걸렸던 것.
권익위 관계자는 “구비 서류에만 매몰돼 한발 더 나아가 귀를 기울여보고 확인해보는 행정을 안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낡은 지갑 속 곱게 끼워둔 초록색 국가유공자증을 꺼내보이는 서 할아버지는 “막상 받고나니 덤덤하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면서도 “나 같은 사람이 아직 많다는데 하루 빨리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게 마지막 소원”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직접 국가유공자를 발굴할 수 있는 법 개정을 통해 전담조직이 마련돼 지난해부터 5100여 명을 찾아냈지만, 아직 6·25전쟁 참전군인 90여만 명 가운데 42만 명은 유공자로 등록돼 있지 않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