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육을 잃은 '국민'…무엇도 잃지 않으려는 '국가'

[노컷 리뷰] 영화 '소수의견'…"우리에겐 서로 용서하고 구원 받는 수밖에는 없는가"

영화 '소수의견' 스틸(사진=하리마오픽쳐스 제공)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둔 영화 '소수의견'(감독 김성제, 제작 ㈜하리마오픽쳐스)은 널리 알려진 대로 2009년 용삼참사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용산참사는 사람의 목숨까지 돈으로 매기는 사회 환경에서 끊임없이 자행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참사' '사태'의 고리 가운데 하나다.

이 점에서 영화 소수의견은 혈육을 잃고 창자가 갈가리 끊어지는 '단장'의 아픔을 겪는 국민들을 앞에 두고, 그 무엇도 잃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친자본적인 국가의 맨얼굴을 고발한다.

소수의견은 뉴타운 재개발을 위한 강제철거 현장에서 발생한 두 사람의 죽음을 둘러싼 법정공방을 다루고 있다.

철거 현장에서 벌어진 경찰의 강제 진압작전 중 철거민 박재호(이경영)의 중3 아들과 작전에 투입된 한 의경이 사망한다. 박재호는 의경을 살해한 혐의로, 철거용역 김수만은 박재호의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각각 체포된다.

해당 철거민 단체에 무료법률자문을 해 온 한국 최대 법무법인 광평은 일이 번거롭게 되자 박재호에 대한 변론을 국선변호인 윤진원(윤계상)에게 이관한다. 윤진원은 구치소 접견을 통해 만난 박재호로부터 "아들을 죽인 것은 철거용역이 아니라 경찰"이라는 말을 듣는다.


이어 윤진원은 자신을 찾아온 사회부 기자 공수경(김옥빈)을 통해 사건이 조작됐다는 것을 알게 되고, 선배인 이혼전문변호사 장대석(유해진)과 함께 국가를 상대로 한 100원짜리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시작한다.

영화 '소수의견' 스틸(사진=하리마오픽쳐스 제공)
17일 서울 을지로에 있는 메가박스 동대문점에서 열린 언론시사를 통해 첫 공개된 소수의견이 자신의 목소리를 풀어내는 방법은 현명했다.

자칫 무거울 수도 있던 극의 분위기는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상업영화의 외형을 띠고 있었다. 배우들의 호연과 사건의 본질을 응시하려는 진심 어린 연출 덕이다.

영화 소수의견은 이해관계에 따라 병든 사회를 떠받치는 기득권층에 대한 분노와, 절박함 앞에서도 서로를 용서하고 구원 받는 우리네의 희망을 전하면서 특별한 울림을 선사한다.

이를 통해 소수의견은 한국 사회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동시대성을 지닌 영화'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한다.

이 영화 속 법정공방은 시민들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다. 극중 대사처럼 "문제의 본질을 싹 감추려는" "합법적이긴 하지만 갑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법과 제도 앞에서, 그나마 시민들의 보편 정서가 반영될 수 있도록 돕는 통로로서 국민참여재판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여전히 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권고' 수준에 머무는데다, 그 효용성마저 부정하는 일부 엘리트층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되면서,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왜곡을 낳고 있는 점은 몹시 안타까운 일이다.

극중 법정 신을 따라가면서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이해와 의미를 되새기게 될 관객들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이러한 안타까움을 덜어 준다.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전락시킨 시스템 안에서 법과 제도는 그 체제 유지를 위한 방편이 되고, 이해관계 면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들부터 순서대로 희생을 강요하기 마련이다.

그 희생의 화살이 필연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겨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것은 '그 희생의 화살이 결국에는 나를 비롯한 소중한 가족과 이웃에게 향할 것'이라는 자각이 아닐까.

이러한 자각을 돕는 따뜻한 메시지를 곳곳에 품고 있다는 점은 영화 소수의견의 커다란 미덕이다.

'마름'(넒은 토지를 지닌 지주를 대신해 소작농들을 닦달하는 중간관리자)을 연상시키는 검사 홍재덕(김의성)의 "국가는 누군가의 희생과 봉사 위에서 유지되는 거야"라는 서늘한 말이 아니라,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흘리는 서로에 대한 용서와 구원의 눈물, 진실을 밝히고자 386세대인 변호사 장대석과 청년세대인 변호사 윤진원, 기자 공수경이 맞잡은 손에 마음이 움직이는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24일 개봉, 126분 상영,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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