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19명이 숨지고 약 160명이 감염돼 5천여명이 격리된 메르스 사태.
그동안 여론의 뭇매를 받아온 보건당국은 지난 16일 진행한 정례브리핑 막바지에 작심한 듯 속내를 쏟아냈다.
지금이라도 방역체계를 강화해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되자, 갑자기 보건당국 관계자가 목소리를 높이며 '비과학적 주장'이라고 반박한 것이다.
당국 관계자는 "방역은 과학에 근거해서 해야 한다"며 "이를테면 재건축 조합에서 1500명 전체를 자가격리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느냐"며 박원순 서울시장을 간접적으로 비난했다.
이어 "접촉에 의해 감염되는데 접촉되지 않았는데도 자가격리한다는 것은 너무 과하다"며 "이런 과학적인 근거에 따라서 우리들이 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메르스 확진자보다 먼저 병원을 빠져나왔는데도 감염된 119번(35) 환자나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간 적도 없는 115번(77·여) 환자 등은 당국의 '과학적 근거'로 설명이 불가하다.
이렇게 감염경로가 특정되지 않는 환자가 속속 출현하고 있지만 현 방역체계를 격상할 필요가 없다는 게 당국의 얘기다.
더 나아가 보건당국은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자신들이 국제기준을 따른 방역체계로 잘 대응했지만, 미성숙한 병원문화가 메르스를 확산시켰다며 국민에게 책임을 떠넘기기도 했다.
당국은 "WHO에서 권고한 기준에 따라서 방역체계를 가동했다"며 "간병인, 보호자들이 통제받지 않고 환자들에게 노출돼 병원감염이 더 확산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13일 정부와 함께 닷새만에 대형병원을 돌며 비공개 평가를 마친 WHO의 발표와도 판박이다.
당시 후쿠다 게이지 사무차장은 "한국 정부의 대응 노력은 굉장히 높은 수준"이라며 "한국 사회의 특정 관습과 관행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했다.
대규모 전염병 사태에서 병원과 국민을 통제하고 안전을 책임져야 할 당사자.
하지만 스스로가 누구인지 잊은 듯한 누군가와 보건당국의 '유체이탈 화법'에 국민들은 메르스 공포에서 당분간 빠져나오기 힘들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