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원내지도부는 청와대의 강한 반감에도 불구하고 정 의장이 "위헌의 소지를 없앴다"고 밝힌 법안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 국회의장, '의안 자구(字句) 정리' 조항 활용해 여야 합의 이끌어
정 의장은 국회에서 새누리당 유승민,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 등 여야 원내대표단과 회동 이후 처음 안에서 자구 일부가 수정된 국회법 개정안에 최종 서명했다.
그는 "정부가 우려하는 사항에 대해 여야가 충분히 숙고하고 협의를 통해 위헌 소지를 완전히 없애서 이송하려는 취지"라며 "정부에서도 충분히 그것을 감안해서 행정부와 입법부의 불필요한 충돌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정 의장 발언의 의미에 대해 "의장이 법안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 '그렇지 않다'는 보증을 해 준 취지"라고 해석했다.
이를 놓고 여야 안팎에서는 박 대통령이 위헌 가능성을 제기한 '국회의 정부 시행령 수정권한 강화 조항'과 관련해 의장의 중재안으로 상당부분 '강제성 논란'이 해소된 만큼 거부권 행사는 부적절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정 의장이 직접 중재한 조항은 국회법 98조2항의 '대통령령 등의 제출' 규정이다. 기존 "대통령령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않을 경우 소관 행정기관장에게 그 내용을 통보할 수 있다"는 조항 중 '통보'로 돼 있는 것을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로 개정했다.
또 구(舊)법의 "이 경우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통보받은 내용에 대한 처리 계획과 그 결과를 지체 없이 소관 상임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는 조항은 "수정·변경 요구 받은 사항을 처리하고 그 결과를 소관 상임위에 보고해야 한다"고 바뀌었다.
세월호법 시행령이 모법(母法)인 세월호법과 충돌한다며 여야 합의로 개정한 것인데, 박 대통령이 '입법부가 행정부에 수정을 강요한 것은 삼권분립 위반이며 위헌'이라며 거부권 행사를 시사했다.
이에 다시 정 의장이 나서 수정을 제안함에 따라 법률 조항 중 '요구'만 '요청'으로 바꾸었다. 이는 국회법 97조, '의안의 정리' 규정에 따른 것으로 이 조항은 "본회의는 의안의 의결이 있은 후 서로 저촉되는 조항·자구·숫자 기타의 정리를 필요로 할 때 이를 의장 또는 위원회에 위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법이 최종적으로 법제처로 이송됨에 따라 개정 국회법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남은 처리 절차도 입법부의 손을 떠나 행정부로 넘어갔다.
이때부터는 헌법의 규정에 따라 진행된다. 헌법 53조는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은 정부에 이송되어 15일 이내에 대통령이 공포한다"며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에는 대통령은 기간 내에 이의서를 붙여 국회로 환부하고, 그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날 이송됨 만큼 거부권 행사 기간은 공포 기한에 준하는 6월30일에 해당된다. 박 대통령은 이 기한 안에 가부(可否)를 결정해 법안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여야는 일단 국회의장이 공증한 만큼 박 대통령이 쉽게 거부권을 행사하지는 못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만약 행사하게 되면 입법부 대(對) 행정부의 정면 충돌 양상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문에 정쟁을 자제하자는 민심도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정 의장과의 회동 자리에서 "우리는 당초부터 강제성이 없고 위헌 소지가 없다고 판단했으나 의장 중재안대로 하면 더 강제성이나 위헌 부분의 걱정이 덜어지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며 "행정부와 국회 사이의 불필요한 갈등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도 "정부와 청와대가 초당적으로 국민의 고통을 덜어줘야 한다"며 "국회와 정부가 정쟁에 휘말리지 않는 게 국민의 바람이라 생각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편 여야는 이날 '의장 중재' 회동에서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 일정도 함께 논의했으나, '인사청문회 자료 미제출' 문제를 둘러싼 이견으로 합의에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