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와 닮은 영화 '손님'…"무서운 건 후유증"

1950년대 산골마을 배경 판타지호러…"전쟁통보다 그 직후가 가치관 붕괴 시점"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로 혼란을 겪는 한국 사회는 영화 '손님'(감독 김광태, 제작 ㈜유비유필름)의 배경이 된, 한국전쟁 직후 지도에도 나오지 않은 어느 산골 마을과 몹시 닮아 있다.


김광태 감독은 9일 서울 신사동에 있는 CGV압구정점에서 열린 손님의 제작보고회에 참석해 "영화는 우리가 사는 현재를 담을 수밖에 없고, 담아야 한다고 본다"며 "손님 역시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배경은 한국전쟁 직후이지만 '당시와 지금의 모습이 과연 다른가' '그때보다 더 좋아졌는가'라는 점을 관객들이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판타지호러 장르를 표방한 영화 손님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대 어느 날, 떠돌이 악사 우룡(류승룡)과 그의 아들 영남(구승현)이 서울로 가던 길에 우연히 지도에도 없는 산골 마을에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이곳 마을은 시끄러운 바깥 세상과 달리 촌장(이성민)의 강력한 지도 아래 모든 것이 평화롭고 풍족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쥐떼 탓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우룡은 쥐떼를 쫓아 주면 목숨보다 소중한 아들의 폐병을 고칠 목돈을 준다는 이장의 약속을 믿고 피리를 불어 쥐떼를 쫓아낸다.

하지만 그날 이후 마을의 비밀이 하나하나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우룡과 마을 사람들은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김 감독은 "한국전쟁 때보다 그 직후가 사람들의 가치관, 사고방식이 붕괴되는 시점이라고 생각했다"며 "'집단 이기주의에 휩싸인 마을에 떠돌이 악사로 그려진 이방인이 들어왔을 때 어떤 일이 생길까' '그 이방인이 마을에 어떤 균열을 일으킬까'라는 물음을 판타지 장르로 녹여내고 싶었다"고 전했다.

그의 말대로 이 영화에서 공포는 한국전쟁도, 마을의 골칫거리인 쥐도 아니다. 오히려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을 공유한 마을 사람들이 외부로부터 온 이방인을 대하는 시선과 태도에서 두려움의 단초를 찾는다.

영화 '손님' 스틸(사진=㈜유비유필름 제공)
이는 메르스라는 전염병 탓에 빚어진 타인에 대한 두려움, 적개심, 혐오감이 사태 안정 뒤에도 후유증으로 남아, 사람들의 유대와 연대를 힘들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와 맥을 같이 한다.

결국 전염병 자체보다 이러한 후유증 탓에 사람들이 한국 사회의 진실을 외면해 버리는 더 큰 문제에 직면할지도 모른다는 의미다.

김 감독은 "판타지 장르를 선택한 데는 '뉴스는 팩트로 사실을 전하지만, 소설은 허구로 진실을 전한다'는 말처럼 판타지적인 요소로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 "타인에 대한 완고하고 이기적인 배척은 삶에 있어서 공포의 원천"

다음달 9일 개봉하는 영화 손님은 날짜에 따라 동서남북으로 이동하며 사람의 활동을 방해하는 귀신인 '손'과 독일의 민간전설인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 모티브를 두고 있다.

이 영화의 독특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은 크게 넷으로 나뉜다.

먼저 류승룡이 맡은 떠돌이 우룡. 절름발이 악사인 그는 약장수와 함께 다니며 배운 웬만한 약을 다 만드는 재주까지 못하는 것이 없는 인물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우룡은 아들의 병을 고칠 목돈을 주겠다는 이장의 약속을 믿고 자신만의 비법으로 쥐떼를 소탕하려 든다. 그의 익살 뒤에는 섬뜩함이 숨겨져 있다는 점에서 반전을 예고한다.

이날 제작보고회에 함께한 류승룡은 "영화 손님은 수준 높은 비유와 상징으로 독일의 민간전설을 우리 실정에 맞게 녹여냈다는 점에서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며 "숨어 있는 비유와 상징이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는데, 찾아도 찾아도 계속 나온다"고 전했다.

두 번째 인물은 이성민이 연기한 마을의 절대권력자 촌장이다. 대소사를 막론하고 마을의 모든 일은 촌장의 손을 거쳐가는데, 그는 집단생활의 질서와 평화를 빌미로 마을 사람 각자에게 철저한 의무를 강요한다. 마을 사람들은 전쟁통에도 자신들을 풍족하게 살게 해 준 촌장을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한다.

이성민은 "촌장은 독재자 같은 악역으로 떠돌이 악사 우룡이 마을에 오면서 혼란에 빠져든다"며 "이로 인해 마을 전체의 안위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불합리한 일을 하게 되는데, 자기 아들에게 대를 물려 줘야 한다는 입장에서 사심을 내보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영화 '손님' 스틸(사진=㈜유비유필름 제공)
세 번째는 천우희가 분한, 무당으로서 학대와 숭배를 동시에 받는 미숙이다. 그녀는 전쟁통에 가족을 잃고 홀로 된 젊은 과부로, 촌장에 의해 마을을 지키는 무녀 역할을 강요 받는다. 우룡의 아들 영남이 친엄마처럼 따르고 우룡 역시 미숙에게 호감을 품는데, 우룡에게 "아무도 모르게 밖으로 나가라"고 종용하는 그녀는 마을에 얽힌 비밀을 아는 눈치다.

천우희는 "유명한 이야기의 배경을 한국의 과거로 옮겨 왔다는 점과 마을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며 "한 마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 안의 인물들이 변모해 가는 과정을 보는 것도 관람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 인물은 이준이 맡은 촌장의 아들 남수다. 그는 장차 마을의 지도자 자리를 물려받을 욕심에 아버지가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한다. 마을 사람들과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쥐떼를 물리치려 온갖 짓을 다 하지만 역부족이다. 급기야 사람들이 재주 많은 우룡에게 호감을 품자 그를 경계한다.

이준은 "남수는 마을 사람들을 위하고 싶고 아버지에게 인정 받기 위해 멍청할 만큼 충성을 다하는 인물"이라며 "우리 영화를 접한 관객들은 한 편의 잔혹동화를 본 듯한 느낌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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