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방부와 질병통제센터가 나서 살아있는 탄저균이 배송된 곳을 파악했다. 탄저균은 문제의 '더그웨이' 병기시험장이 있는 유타주에서 캘리포니아주와 텍사스, 위스콘신,테네시,뉴저지,뉴욕,매릴랜드,버지니아,델라웨어 등 9개 주에 보내졌다. 그리고 또 한 곳. 한국의 오산 미군기지였다. 활성화된 탄저균이 보내진 유일한 '외국'이었다.
◇주피터 프로젝트의 실험대상, 한국
미군은 왜 수많은 해외 주둔지 가운데 유독 한국에만 탄저균을 보냈을까? 바로 '주피터' 프로젝트 때문이다. 주피터 프로젝트는 '합동주한미군포털 및 통합위협인식'(Joint USFK Portal and Integrated Threat Recognition)'이라는 프로그램의 머릿글자(JUPITR)를 따서 부르는 말이다. 주피터 프로젝트는 한마디로 생화학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병원균이나 독성을 조기에 탐지하고 종류를 확인하며 관계기관과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주한미군의 전투력을 보호하기 위한 일련의 프로그램이다.
냉전해체 이후 미국은 비교적 싼 값에 대량살상이 가능한 생화학 무기가 적성국가나 테러세력들의손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극도로 우려해왔다.
이에 따라 지난 2009년 '생물학적 위협에 대비한 신전략'을 세워 생화학 공격 가능성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전략을 수행할 대표적인 곳으로 한국을 선택했다. 국제사회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더러운 폭탄'을 끊임없이 만들고 있는 북한과 맞닿은데다 2만여명의 미군이 주둔해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중시전략'도 한국을 선택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2013년 주피터 프로젝트의 전모가 공개됐다. 생화학 감시포털을 구성하고 생화학 물질을 판별하는 장비를 도입하고 주한미군 기지 주변에 생화학 물질 감지기를 설치하는 한편 조기경보 체제를 갖추는 내용이었다.
주목할 점은 생화학 물질 분석 대목이다. 별다른 전문지식이 없는 군인들이 생화학 독성물질이나 병원균 샘플을 채취해 야전에서 단시간안에 종류를 알아내도록 하는 것이 핵심목표다. 과거처럼 소수의 전문인력이 샘플을 채취한 뒤 미국 본토로 보내 독성물질의 실체를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려면 며칠이 걸리는데, 그 기간 동안 미군의 전투력은 상당부분 훼손될 수 밖에 없는 문제를 막기 위해서다. 주피터 프로젝트에 따르면 독성물질 발견 4~6시간 내에 분석을 마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주한미군은 'JBAIDS' 등과 같은 분석장비를 도입했다. 이 장비가 설치된 곳은 용산과 오산 등 3곳이다.
특이하게도 미 국방부는 지난 2013년 이 장비를 소개하면서 주요분석 대상으로 탄저균과 보톡스 균을 들었다. 그리고 그해 여름 이 장비의 사용법과 샘플 처리법 등을 교육하기 위해 생화학 전문가 그룹이 오산과 용산을 방문하기도 했다. 주피터 프로젝트의 계획서상으로는 총 3번에 걸쳐 한국방문 교육을 하도록 돼 있다. 2014년에 집중적인 테스트를 거쳐 올해안에 시연을 한다는 계획도 있다. 미군 당국이 한국에 탄저균을 보낸 시기와 공교롭게도 일치한다.
계획서로 판단할 때 미군 당국이 과거에도 탄저균을 주한미군에 지속적으로 보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미 국방부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고로 탄저균에 노출된 26명 가운데 무려 22명이 주한미군인 점을 감안한다면 주피터 프로젝트의 규모와 지속성을 어느 정도 추정해볼 수 있다.
주피터 프로젝트는 지금도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다. 미군 당국은 지난달 더그웨이 병기시험장에서 생화학 물질 센서 시험을 했다. 이 센서장치는 곧바로 평택 미군 기지로 보내져 시험평가에 들어간다. 경기도 평택의 캠프 험프리에 설치돼 센서종류별 장단점 등을 파악하게 된다.
미군의 생화학 전략의 실험장으로 한국이 선택받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