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싣는 순서>
① '칼보다 강한 펜'…언론인이 권력에 맞서는 법
(계속)
로웰 버그만 교수의 삶은 그야말로 한 편의 영화다. 실제로, 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인사이더'라는 영화가 존재한다.
그는 평생을 탐사 보도에 매진해왔다. 이 과정에서 거대한 권력과 정면 대립하며 수많은 시련을 겪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탐사 보도는 그의 삶을 즐겁게 하는 삶의 원천이다.
비판적 사고로 사건의 이면을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것. 버그만 교수가 말하는 것은 가장 본질적이지만, 현대 언론 환경에서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가치이기도 하다. 광고가 주 수입원인 언론사의 특성 상, 권력과 자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버그만 교수는 21일 서울 중구 을지로 7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에서 열린 서울디지털포럼(이하 SDF)에서 모든 언론인들이 겪고 있는 권력과 자본 그리고 탐사 보도 사이의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비판적 사고와 깨어있는 사고가 왜 뉴스 업계에서 중요한 지 말하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탐사 보도 업계에서 전설로 남은 '담배 회사 보도'의 전말을 공개했다.
1996년 어느 날, 미국 CBS 시사 프로그램 '60분'에서 미국 3대 담배 회사인 '브라운&윌리엄슨'이 니코틴, 쿠마린 등의 물질을 더 첨가해 담배의 중독성을 강화 시켜왔다고 보도한다. 파장은 엄청났다. 이후 '브라운&윌리엄스'는 49개 주 정부로부터 소송을 당하고, 그 손해 배상액은 약 2,500억 달러에 달했다. 담배 광고에 대한 규제가 도입된 것도 이 때다.
보도의 중심에는 내부고발자 제프리 위건드 박사와 그를 취재한 '60분'의 PD, 버그만 교수가 있었다.
어렵게 따낸 인터뷰의 편집을 끝냈을 때, 버그만 교수에게 결정의 순간이 다가왔다. 해당 담배 회사의 주주이자 큰 합병 프로젝트가 예정됐던 CBS의 경영진이 '이 보도에 모든 자산을 거는 것은 위험하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사측의 반대에도 그는 공익을 선택했고, 이후 CBS에서 해고되기에 이른다.
그는 "제가 선을 넘었다. 도덕적 결정이었다"면서 "우리가 갖고 있는 정보는 고용주의 소유지만, 저는 제 정보가 그 기준에 따르지 못하게 만들었다. 고용주와 이야기를 했고, 그에게도 가족이 있고 법적으로 곤란했지만 그것은 그 사람의 문제였다"고 회상했다.
그가 정보에 대한 자유를 획득하게 된 방법은 단순했다. 일반적으로 기자들이 취재 이야기를 다른 이들과 공유하지 않는 것과 달리, 버그만 교수는 경쟁사 및 다른 뉴스 기관의 동료들과 '담배 회사 보도'의 취재 내용을 공유했다. 공익을 위한 비판적 보도는 '공공재'라는 생각이었다.
이후 이 같은 개념이 미국 언론에 도입돼 뉴스 기관의 협업 사례가 등장했다. 사건이 클수록 하나의 뉴스 기관이 취재하기 어려웠고, 기자들은 특종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현재 탐사 보도 기관들이 세계적으로 권력형 부패를 조사하고 있을 뿐 아니라, 뉴스 기관 간 협력 덕분에 취재 및 보도가 이전보다 수월해졌다.
버그만 교수는 "200개 정도의 공익 보도 집단이 있는데 이중 150개가 미국에 있다. 새로운 현상이다. 더 많은 사람이 공익을 위해 힘을 합쳐야 하고, 뉴스를 공공재로 봐야 한다"며 "권력에 맞설 수 있는 언론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버그만 교수는 언론인들이 인식해야 할 세 가지로 '회사의 기준이 무엇인가', '소유주가 누구인가', '회사에서 무엇을 보도하지 않으려고 하는가' 등을 꼽았다.
그는 "보도하지 않을 것에 대해 알고 있는데, 대치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자신의 자리를 보호하고 싶다면 혼자서 취재를 한 후, 위에 알리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면서 "회사 내 각 계층에 있는 책임자 그리고 경영진까지 그 사실에 대해 알려서 첫 단계부터 그들이 인식하고 참여해, 취재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도 "저널리즘의 원칙에 근거해서, 기자로서 사건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최초의 직감이 있다"며 "만약 분노를 느낀다면 넘어가서는 안된다. 어쩔 수 없이 밀어붙여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굳은 의지를 드러냈다.
기존 언론에서 벗어난 대안 언론의 출현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아끼지 않았다.
버그만 교수는 "일반적으로 제 보도에 대한 저작권은 회사가 갖게 된다. 예전에, 방송사 측에서 결과가 우려돼 프로그램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는데 그 저작권이 방송사에게 있어 다른 곳에 가져갈 수도 없었다"고 직접 경험했던 사례를 털어놓았다.
이어 "독립적인 탐사 보도는 그런 문제에 봉착하지 않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영리 탐사 보도 단체들이 공익 증진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대안 언론의 역할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탐사 보도는 이제 비영리 언론을 넘어 기존 주류 언론들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지난 10년 간, 기존 미디어 광고 수익 모델이 점차 추락하면서 주류 언론들이 탐사 보도에 관심을 갖게 됐다. 많은 매체가 난무하는 인터넷 시대에, 언론사들이 차별화에 노력하고 있다. 탐사 보도는 각 언론사가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인식 시키고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 각광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기존 언론의 보도와 관련 "어떤 것을 보도하고, 보도하지 않느냐. 미국은 각 주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 지역 언론사들이 발전했다. 기존 언론은 이것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 그러나 공익을 위해 일하는 저널리즘의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버그만 교수가 찾는 이야기는 어디에나 있다. 미국 정보기관 내부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이 제공한 정보, 미국 내 불법 체류자 여성 그리고 신용카드 회사까지.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그는 세상 모든 이슈에 호기심을 갖고 흥미로운 답을 찾아 나서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오늘의 '관심사'를 찾는다는 버그만 교수. 그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