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2003년부터 시작된 아프리카 수단의 다이푸르 내전도 가뭄에 의해 촉발됐다. 유엔이 '기후변화가 가져온 첫 번째 전쟁'으로 지명한 수단 다이푸르 분쟁으로 20만명이 사망하고, 20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기후변화가 단순히 전세계적인 이상기후와 기상재난을 넘어, 이제는 사회 갈등과 무력 전쟁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100년까지 지구 온도 상승을 섭씨 2도 이하로 묶지 못하면 전쟁과 재난은 전 지구적으로 확산될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지난해 전세계 과학자들이 모여 작성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5차 보고서의 핵심 내용이다.
◈ 이대로가면 21세기 내에 전지구적 재앙 불가피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온도 상승을 2도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산업혁명이 시작된 1870년 이래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2900기가톤(GtCO2)을 넘겨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인류는 2011년까지 이미 총량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1900기가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상태다.
앞으로 허용된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000기가톤에 불과한데, 이미 자원개발을 통해 발굴돼 있는 화석연료의 양만 해도 이를 훌쩍 넘어선 상태다. 결국 인류가 생존을 위협받지 않으려면, 석유와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를 더 이상 캐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문제는 전쟁과 재난으로 이미 고통 받고 있는 나라들은 탄소배출량이 미미한,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이 거의 없는 국가라는 점이다. 반면, 산업혁명 이후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해 온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들은 적도 인근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후변화의 영향을 적게 받고 있다. 현재 전세계 탄소배출량 7위인 우리나라에서도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과 내전은 아직도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 배출은 선진국이, 피해는 후진국에...신기후체제의 출발점
그러나 지구는 계속 뜨거워지고 있고, 그 부작용은 가장 취약한 지역에서부터 터져 나오고 있다. 이대로 손 놓고 있는다면 인류는 마치 서서히 데워지는 냄비 속 개구리와 같은 신세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올해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6개 당사국들은 늦어도 오는 10월까지는 어떤 형태로든 2020년 이후부터 시행할 이산화탄소 감축공약(INCD)을 제출해야 하고, 각국의 감축공약은 파리 총회에서 취합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2020년부터는 선진국과 후진국을 막론하고 모든 국가가 이산화탄소 감축 의무를 지게 된다. 개발도상국과 후진국도 탄소감축에 나서는 만큼, 선진국들은 이들의 기후변화 적응을 위한 기술이전과 재정지원에도 나설 예정이다. 이같은 내용을 포함해 2020년부터 시작될 이른바 '신(新)기후체제'에 대한 합의, 그리고 구체적인 로드맵이 올해 파리 총회에서 결정된다.
◈ 우리는 얼마나 준비돼 있나: 피터스버그 회의의 의미
이날 회의에서 로랑 파비우스 프랑스 외교장관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발언을 인용하며, “우리에게는 다른 대안(Plan B)이 없다. 왜냐면 여분의 행성(planet B)이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신기후체제의 채택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는 뜻이다.
이틀간 자유토론 형식으로 이뤄지는 회의 결과는 19일 오후 발표될 예정이다. 파리 총회를 앞두고 주요국들이 얼마나 신기후체제에 기여할 준비가 돼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는 감축공약을 오는 9월쯤 제출할 계획이다. 산업계의 반발을 고려해 다른 나라의 상황을 봐가면서 수위를 조절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기후변화협약 총회 사무국은 책임있는 국가들이 늦어도 상반기까지는 감축공약을 제출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유엔기후정상회의의 공동의장을 맡은바 있어서 우리나라가 이같은 요청을 무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피터스버그 회의에서 주요국들이 신기후체제에 대해 보다 진전되고 의욕적인 입장을 표명한다면, 우리나라의 감축공약을 둘러싼 논의도 자의든 타의든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