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는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24년 만에 무죄를 확정했지만, 모든 진실이 가려진 건 아니었다.
지난해 2월 서울고법에서 무죄 판결이 선고된 뒤 "재판부가 유감을 표시하지 않는 것이 유감"이라고 말했던 강기훈씨는 이날 대법원 법정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가 "나흘째 연락이 두절된 상태"라고 밝힌 전국민족민주연합 동료 인사들은 '그의 분노'를 또다시 언급해야 했다.
강씨와 함께 사건 당시 전민련에서 사무처장 대행을 했던 김선택씨는 대법원 선고 직후 "강기훈 만이 아니라 김기설을 두 번 죽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김기설이 썼다고 하지 않고 강기훈이 안 썼다고만 했다"면서 "강기훈도 지금의 사법부의 그런 태도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재심 사건의 원심 법원이었던 서울고법의 판결은 사실상 '김기설의 유서 필적이 강기훈의 필적과 다르다'는 사실만 인정하고 있다.
1991년 국과수의 필적 감정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정도다.
'유서는 김기설이 쓴 것'이라고는 확인하지 않음으로써 여전히 김기설의 분신은 자신의 결심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 판결을 통해 인정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거나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며 김씨의 죽음을 재단했던 이들의 발언과 '제3자의 사주를 받고 자살했다'는 검찰의 기소 내용, 이를 인정한 초심 법원의 판결은 여태껏 유효한 셈이다.
'배후세력'으로 공격받으며 오욕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강씨의 분노는 그래서 사그라들지 않은 것이다.
이날 대법원은 관례처럼 "상고를 기각한다"는 주문만 읽었다. 다른 재심 사건과 달리 사과나 유감 표명은 없었다.
판결문의 내용은 "법리와 기록에 비춰 살펴보면 (재심의) 원심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다"는 정도 뿐이다.
재심청구 이후 무죄확정까지 7년의 시간이 더 흘렀던 데는 검찰도 한몫했다.
지난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결정을 토대로 재심을 청구해 개시 결정이 난 이후 재항고와 심리지연, 무죄 판결에 대한 상고가 있었다.
강씨의 변호를 맡은 송상교 변호사는 "다른 사건에서는 매우 보기 어려운 검찰의 대응이 있었고, 대법원은 납득할 수 없게 오랜 기간 사건을 갖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지난 과거에 대해 제대로 책임지려 하지 않고 계속 자신들의 과오와 사건 조작을 반성하지 않는 검찰의 태도는 반드시 지적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씨와 전민련 활동을 했던 인사들은 이날 무죄 확정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이 판결이 현재도 진행 중인 세월호를 비롯한 여러 진실규명 노력 등에 조그만 힘이라도 보탤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