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인력 1명이 한 달에 업체 수백 곳을 평가하고 평가자의 숙련도도 떨어지기 때문인데, 은행권의 부실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 “은행, 신뢰할 수 없는 보고서 토대로 대출 결정은 안돼”
최근 은행연합회가 기술신용보증기금, 한국기업데이터, 나이스평가정보 등 기술신용평가기관, TCB 3곳에 대한 기술금융실태조사를 벌였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14일 “업체당 40여건씩, 120여건을 조사한 결과 평가서에 매겨진 기술등급과 등급 결정에 대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등 적지 않은 오류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기술평가 인력이 크게 부족한 데다 숙련도도 떨어져 업체에 대한 기술평가가 부실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7월부터 올 3월까지 9개월간 처리된 기술평가건수를 보면 기술신용보증기금 6천221건, 한국기업데이터 9천41건, 나이스평가정보 7천926건이다.
기술신용보증기금의 검수인력은 10명, 나이스평가정보는 5명에 불과하다. 검수인력 한명이 한 달에 수 백건을 평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기술금융 대출 신청 업체들에 대한 최종 검증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다.
현장 검증에 나서는 평가 전담인력도 충분치 않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현장 평가인력 한 명이 한달에 20-30건을 처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특히 “평가인력의 숙련도가 떨어지는 것이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은행 간 기술금융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기술평가 수요가 크게 늘어났지만 인프라가 받쳐주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해당기업의 기술력을 보고 대출을 집행하는 은행들은 불만이 클 수 밖에 없다. 부실 평가서를 바탕으로 대출이 이뤄지면 은행의 건전성 문제가 대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무늬만 기술금융’인 사례가 늘면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서병호 연구위원은 “대출의 건전성 관리가 생명인 은행의 입장에서 신뢰할 수 없는 보고서를 토대로 대출여부나 대출조건을 결정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아울러 기술신용평가기관인 TCB와 은행간의 불합리한 계약이 기술금융 관련 사회적 비용을 크게 증가시킬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TCB가 기술평가를 한 기업에 대출이 발생해야 수수료를 더 많이 받는 계약구조를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TCB가 수수료 수입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업의 기술력을 과대 포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은행과 TCB를 대상으로 실시한 기술금융실태조사 결과와 개선방안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