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의 사회적 합의를 깨야 한다는 점이나, 당청의 이견으로 긴밀한 여권공조가 어렵다는 점 등 청와대 개입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견해도 없지는 않다.
9일 여야 정치권에 따르면 현재까지 대외적으로 확인된 청와대 의사는 '공무원연금 개혁 후 국민연금 논의'로 요약된다. "공무원연금에 국민연금을 연계시켜 국민에게 큰 부담을 주는 것은 여론수렴 과정을 거쳐야 했다"(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는 이유로 여야 합의를 거부한 것이다.
◇ 청와대의 의도는 뭔가
이대로라면 청와대는 여야의 향후 협상에서 국민연금 연계만 배제되면 만족할 수 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지금은 공무원연금만 개혁하자는 게 청와대 생각"이라며 "'국민연금은 나중에 해야지 벌써 논란거리를 만들면 안된다'거나, '소득대체율 인상은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이 아니다' 등 이유가 있을 수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기존 개혁안의 전면 폐기를 염두에 뒀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른 관계자는 "지난 6일 마지막 본회의 당일 날 청와대나 친박계의 조직적 반발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첫 단추를 제대로 끼워야 한다는 생각에서, 아예 강도높은 개혁입법안이 재발의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음모론적 시각도 포착된다. 또 다른 관계자는 "청와대가 공무원연금 개혁 의지가 있었다면, 마지막 본회의 날 친박계를 데리고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당 지도부 힘을 빼 내년 총선 공천권을 확보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 '사회적 합의' 깰 수 있을까
청와대의 진의가 무엇이든, 향후 재협상에서 '국민연금 연계 배제'가 순탄하게 성사된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당장 정치적 부담이 크다. 공무원연금 개혁안만의 분리처리 시도는 지금까지의 사회적 합의를 전면 부정하는 일이 돼 명분이 약하다.
그동안 정부와 공무원단체 등이 참여한 연금개혁 실무기구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인상'에 합의했고, 여야 지도부는 이 합의를 '존중한다'고 합의했다. 여야는 4월국회 마지막 본회의 날 다시 '50%라는 숫자를 관련 국회규칙의 부칙별지에 적시한다'고 합의하면서, 공무원연금 개혁의 전제조건을 완성한 상태였다.
실무기구 합의에 정부(인사혁신처 및 행정자치부)가 참여한 만큼 청와대가 국민연금 연계를 거부하는 경우 '자가당착'이란 지적을 받을 수 있다.
이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실무기구의 '50% 합의'는 여야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로 만들어진 것이고, 여야가 마음대로 손 댈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라고 공세를 취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 당청·계파 갈등 일단 봉합됐지만…
협상 파기과정에서 당청간 갈등이나 여당내 계파갈등이 고조된 점도 장애요인이다. 지도부의 노력으로 감정 표출은 자제되고 있지만, 정책적 측면에서의 이견은 여전하다.
당은 '기존 합의를 존중할 수밖에 없다'는 기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원내 관계자는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은 이미 확정이 돼 있다. 사회적기구 합의도 있고, 이를 존중한다는 여야 합의도 있다.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비박계 의원은 "야당이 양보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면서도 "청와대가 행여라도 제로베이스에서 재협상하자는 생각이라면, 그것은 19대 국회에서 연금개혁 하지 말자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당의 다른 관계자는 "아쉽지만 여당으로서는 최선의 협상이었다. 이번 개혁안이 완벽하지 않다면 70점쯤 된다고 치자"며 "이 성적표라도 받을 것인지 아예 다 포기하고 0점을 맞을 것인지만 남았다. 그런데 과연 0점을 맞는 게 현명한 것이냐"고 반문했다.
연말정산 추가환급용 소득세법 개정안 등의 처리를 위해 여야가 국회를 열기로 한 만큼 연금개혁의 해법 모색은 계속될 전망이다.
일단 명분에서나 현실적 측면에서나 청와대의 영향력 행사에는 한계가 확연하다. 하지만 청와대가 국민연금 연계 거부를 고수한다면, 여야 어느 쪽도 뾰족한 대안이 없는 이상 협상이 난항을 겪게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