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연금 개혁을 놓고 6개월 논의를 해온 터라 결과는 더욱 허탈하게 느껴지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합의를 파기했다'며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향해 사과를 요구했다. 신임 이종걸 원내대표도 "새누리당과 명확하게 싸울 것"이라며 공세를 예고하고 있다.
당정은 '소득대체율 50%'를 명기하는 것에 대한 사전 조율 여부를 놓고 물밑에서 '진실게임'을 벌이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가 알고 있던 것과 합의 내용이 다르다"는 입장인 반면 여당은 "협상 내용을 설명했고 청와대도 내용을 알았을 것"이라며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도대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를 사회적기구 구성을 위한 국회 규칙이나 부칙에 담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표면적으로 보면 '50%'는 향후 사회적기구 논의과정에서 반드시 지켜야하는 '철칙'처럼 읽히기 쉽다. 처음 이 수치를 내밀었을때 여당 쪽에서 "사회적기구에서 논의할 부분인데 처음부터 정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반박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하지만 이를 한꺼풀 벗겨보면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50%'라는 숫자는 노후보장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국민연금을 강화한다는 취지를 살려서 논의하자는 '정치적 선언'에 가까운 것이다.
청와대가 지난 2일 "월권"이라며 반발한 이후 여당 지도부가 50%에 대해 "합의한 내용이 아니다"라고 한발 뺀 이후에도 결국 실무기구 합의안에 대해 "사회적 대타협의 모범적 사례가 될 것"이라며 추인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여당이 강한 내부 반발에도 결국 부속서류에 첨부하는 방향으로 야당과 합의 직전까지 간 것도 같은 흐름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상식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최소한 협상의 전후사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여야 누구도 '50%'를 명기하더라도 이것이 그대로 결정된다고 장담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논의는 사용자 단체, 노조, 시민단체 등 더욱 복잡한 구조속에서 이뤄지기 때문이 실타래를 풀기가 공무원연금보다 더욱 어렵다는 것은 불보듯 뻔한 사실이다.
논의 과정에서 국민들이 '더내고 더 받는' 방식에 대해 반대할 경우 논의는 아예 진척이 안될 수도 있다.
새정치연합은 50%를 못박을 것을 강하게 요구한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여당이 국민연금 강화를 위한 논의에 참여할 것을 보장받는 장치였다고 설명한다.
청와대의 눈치를 보는 여당이 형식적으로 참여하는 데 그치면 사회적기구는 '빈손'에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
강기정 정책위 의장은 "논의 과정에서 이 숫자가 45%가 될지, 50%가 될지는 알수 없다"며 "실무기구가 합의한 50%를 넣은 것은 합의정신을 이어가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김무성 대표가 여야 대표 회동에서 합의문 문구에 대해 “존중한다”는 표현을 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청와대가 진짜 이런 상황을 모르고 있었느냐는 의심섞인 눈초리가 없지 않다. 다른 정치적 이유로 막판에 여야 합의에 대해 '비토'를 놓은게 아니냐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김무성 대표에 대한 견제론도 나온다. 아니면 국민연금 강화 논의 자체를 꺼린 청와대가 판을 업은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어느 경우라도 여야 협상이 깨지게 한 청와대의 대응은 지나쳤다는 데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