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연대기' 손현주는 현대판 '오이디푸스 왕'

[노컷 리뷰] '괴물' 같은 시스템과 맞닥뜨린 나약한 '인간' 밀도 있게 그려내

특급 승진을 앞둔 최반장(손현주)은 회식 뒤 의문의 괴한에게 납치 당한다. 위기를 모면하려던 최반장은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눈앞에 둔 승진을 위해 사건을 은폐하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최반장이 죽인 시체가 경찰서 앞 공사장 크레인에 매달려 만천하에 공개된다. 자신이 진범인 사건을 담당하게 된 그는 좁혀 오는 수사망에 불안감을 느끼고, 결국 사건을 조작하고 재구성하기에 이른다.

손현주 주연의 스릴러 '악의 연대기'(감독 백운학, 제작 ㈜비에이엔터테인먼트)와 345만 관객을 모은 '끝까지 간다'(2014)를 비교하는 목소리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두 작품 모두 경찰을 주인공으로 한 속도감 있는 범죄 스릴러물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 듯싶다.

6일 서울 행당동에 있는 CGV 왕십리점에서 열린 언론시사를 통해 공개된 악의 연대기는 약육강식과 물질만능을 좇는 '괴물' 같은 시스템 안에서,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행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한 인물들을 그리고 있다.

'악(惡)'이라는 말이 들어간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나 규범, 즉 '윤리'다.

이 지점에서 악의 연대기 속 주인공은, 자성 없는 선택만을 거듭했던 끝까지 간다의 주인공과 궤적을 달리한다. 관객들이 이 영화의 캐릭터들에 깊이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막다른 곳에 다다름'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아포리아'는 어떤 일에 대한 해결 방도를 찾을 수 없는 난관이나 논리적 난점을 가리킨다.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최반장이 그 사건을 담당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는 아포리아에 빠져 있다.

'오이디푸스 왕' 등 고대 그리스 비극이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운명에 처한, 즉 아포리아에 빠진 주인공을 다룬다는 점에서 악의 연대기는 그 연장선상에 위치한다. 다만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신의 영역에 해당하는 '운명의 굴레'는 악의 연대기에서 '사회 시스템'으로 대체된다.

악의 연대기에서 시스템 위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관, 믿음이 시스템과 충돌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받게 된다.

하지만 "나쁜 사람이 아니다"라는 극중 대사처럼 그들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시스템의 강요에 저항하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이 영화 속 캐릭터가 체스판의 말처럼 활용되면서도 각각의 뚜렷한 색깔을 지니고 있는 근거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배우 손현주가 주는 신뢰감은 이 영화를 떠받치는 든든한 기둥이다. 그는 최반장이라는 캐릭터가 품고 있을 법한 중압감, 우울함, 암담함과 같은 감정을 눈빛만으로도 오롯이 드러내면서 극에 대한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마동석, 최다니엘, 박서준의 안정적인 연기도 극에 설득력을 불어넣는 요소다.

1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102분 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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