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이 핡퀴고 지나간 네팔 전역은 아직도 신음중이다. 수도 카트만두와 관광도시 포카라 등 주요도시들은 복구가 한창이지만 히말라야에서 뻗어내려온 산등성마다 위치한 전통가옥들은 완파됐다. 산간마을은 길이라고 해봤자 차 한대 겨우 지날 수 있는 너비고, 이마저도 산사태로 끊기거나 유실돼 환자 후송용 차량이나 마을 복구용 중장비의 접근은 꿈도 못꾼다.
카트만두에서 동북쪽으로 50km 넘게 떨어진 신두팔촉과 멜람치 지역. 안나푸르나에서 로체까지 이어지는 히말라야 산맥 중간쯤 랑탕 국립공원이 있고 바로 아랫쪽에는 해발 1500m 안팎에 마을들이 빼곡하다.
이곳 양리라는 마을에 사는 네팔 여인 살미다(26)씨는 산아래를 향해 맨발로 걸었다. 집은 무너졌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뱃속에는 9개월된 아이를 임신한 만삭 상태였다. 배가 아팠다. 먹을 게 없었다. 살미다씨는 며칠을 걸어 산 중턱쯤에서 운좋게도 다국적 구호팀을 만날 수 있었고 헬기로 외국의료진이 모여있는 멜람치 군의료캠프로 후송됐다.
임산부인 살미다씨가 군캠프에서 한국의료진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멜람치 의료캠프에는 폴란드와 일본, 태국 의료진들이 지진에서 살아남았지만 심각한 부상을 입은 네팔인들을 치료중이었다. 살미다씨도 무너지는 집 잔해에 온몸을 맞았지만 무엇보다 급한 것은 뱃속에 있는 아이였다.
◇ "딱 보니 임산부더라구요 얼릉 산부인과 선생님을 불렀지요"
정태기(김해 서울이비인후과의원) 원장과 권현옥(진주 권현옥산부인과의원) 원장, 조혜인 경남의사회 과장 등 대한의사협회 소속 한국 의료진 선발대가 살미다씨를 만난 건 우연이었다.
멜람치 군의료캠프에 미리 자리를 잡은 폴란드 의료진은 한국 의료진에 별로 호의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라인을 쳐놓고 여기까지는 넘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했다. 정태기, 권현옥 원장 등은 기분이 조금 상했지만 대한의사협회 의료 본진이 올 때까지 의료지원 계획을 수립해야하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았기에 네팔의사협회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려고 했다.
"마침 여자 환자가 왔는데 배가 부르더라고요, 딱 보니까 임산부잖아요, 폴란드팀은 출산 관련 장비가 없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치료한다고 하고 산부인과 전공 권현옥 선생님을 불렀지요" 정태기 원장의 말이다.
살미다씨를 눕히고 간단한 응급조치를 마친 한국의료진은 한국에서부터 공수한 포터블(Portable) 초음파기를 꺼내들었다. 옆에 있던 폴란드의료팀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오지까지 초음파기를 들고 올 거라고는 예상하기 못했던 것. 청진기와 초음파기를 살미다씨 배에 갖다댔다. 다행히 뱃속 아이는 숨을 쉬고 있었다. 안도했다.
뱃속의 아이가 건강하다고 말해줬다. 살미다씨는 누워서 눈물을 흘렸다. 옆에서 구경하던 네팔 군관계자들도 환호성을 질렀다.
살미다씨는 애원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망설이던 의료진은 "건강한 아들"이라고 속삭였다. 살미다씨는 울음을 터트렸다. 현지 통역을 통해 알아봤더니 살미다씨는 여섯살배기 딸아이를 동네에 남겨놓고 내려왔다. 네팔은 아직도 남아선호사상이 강하다. 자연재해 속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마지막 남은 희망이 꺼지지 않은 것을 확인한 살미다씨는 연신 "고마워요 고마워요"를 반복했다.
대한의사협회 소속 한국의료 선발대는 살미다씨를 카트만두 병원으로 후송해 출산을 하는 게 낫다고 판단, 주변 다른나라 의료진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한국 의료진을 바라보는 분위기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앞다퉈 살미다씨의 후송을 책임지겠다고 나섰다.
히말라야라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품은 네팔. 하지만 최빈국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는 네팔. 강진으로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흔들렸지만 새생명의 탄생 앞에서는 모두가 하나가 됐고 행복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