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쉼 없이, 치열하게 창작 활동을 이어온 허영만 작가의 말이다. ‘각시탈’, ‘제7구단’, ‘날아라 슈퍼보드’, ‘비트’, ‘타짜’, ‘식객’, ‘꼴’ 등 주옥같은 히트작을 탄생시킨 허 화백의 비결은 재능이 아닌 화수분처럼 솟구치는 뜨거운 열정에 있었다.
허영만은 28일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허영만展-창작의 비밀’ 전시회 미디어데이를 열고 취재진과 만났다. 29일부터 오는 7월 19일까지 80일간 열리는 이번 전시는 그가 지난 40년간 그린 15만장의 원화와 5천장이 넘는 드로잉 중 500여점을 선별해 대중에게 선보이는 자리다. 허영만은 직접 관람객에게 만화를 주제로 특강도 진행할 예정이다.
예술의전당이 국내 만화가를 초대한 것은 이번이 처음. 허영만은 “이번 전시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80일 동안 열심히 하겠다”며 굳은 각오를 다졌다. 또 “과거를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허영만을 보여주는 게 목적”이라고 밝혔다.
“이제 우리(만화가들이)가 예술의전당까지 들어갈 수 있구나 하고 놀랐다. 반드시 이번 전시가 성공해야한다. 그래야 제2, 제3의 만화 전시회가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의 바로미터는 곧 많은 관람객이다. 기대하고 있다.”
무려 215개의 타이틀을 탄생시킨 그는 대뜸 “부끄럽다”고도 했다. “215 페이지를 그려도 적지 않게 그렸다고 생각되는데, 난 215 타이틀의 만화를 그렸다. 몇 권인지 셀 수도 없다. 만화가들이 불행한 시절이 있었다. 나도 한 달에 한 타이틀, 즉 3권을 그렸다. 6~9권까지 그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식으로 지내다 보니 타이틀이 많아졌다. 부끄럽다는 말은 만화계의 부끄러운 역사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게 함께 고군분투해온 이들 중 현재까지 꾸준히 작품을 내는 건 허영만뿐이다. 그는 이에 대한 아쉬움도 표했다. “현재 연재를 하는 사람은 내 나이 또래 중 나뿐이다. 같이 어깨를 겨뤘던 동료들이 보이지 않다는 건 서글픈 일이다. 아무도 없이 혼자하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1등이다.”
허영만이 유일무이한 존재가 된 비결은 재능이 아닌 노력과 열정이다. “나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는데, 지금 다 없어졌다. 재능을 발휘하지 못한 것 같다. 난 스스로를 담금질을 하는 편이다. 나를 가만히 안 놔둔다. 나를 내가 못살게 굴고, 그러면서 조금씩 발전 했다.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요인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근면이다. 부지런떨면서 살았다.”
마치 ‘만화 밖에 모르는 바보’ 같았다. 1974년 ‘집을 찾아서’라는 단행본을 통해 데뷔한 그는 쉬지 않고 40년을 달렸다. 저마다 기억하는 작품은 다르지만, 허영만의 작품을 아예 모르는 이는 없다. 열정은 현재진행형이다. 최근엔 모 일간지에 신작 ‘커피 한 잔 할까요?’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건 그가 커피를 한 잔도 마시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사실 난 커피를 마시면 밤에 잠을 못 잔다. 저녁에 족발을 먹고도 밤에 잠이 안온 적이 있었는데, 족발에 색을 넣기 위해 커피를 사용한 것이었다. 그런데 커피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일본에 유명한 낚시 만화를 20년 동안 그린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도 낚시 못한다. 하하. 공부를 하니까 그릴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공부하면서 그리는 게 독자들에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커피 이외에도 아직 작품에 녹여내고 싶은 소재들이 참 많다고. 가장 최근 느낌이 온 건 돈에 관한 이야기란다. “며칠 전에 사위와 손자를 데리고 1박 2일 야유회를 갔다. 사위가 외국계 은행을 다니는데 돈에 얽힌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더라. ‘타짜’를 취재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의 느낌과 같았다. 돈을 잃은 사람의 이후 이야기를 한 번 해보고 싶다.”
제2의 허영만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똑같은 재능을 가지고 시작해도, 승부는 책상머리에 있다. 오래 많이 붙어 있어야한다. 영화와 소설도 많이 봐야한다. 다른 사람의 작품도 무심코 보지 말고 장점을 도둑질하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한다.”
그렇다면 만화가라는 직업은 그에게 꼭 맞는 직업일까. 놀랍게도 허 화백에게 꼭 맞는 직업은 따로 있다고. “고등학교 시절 서양화를 전공하려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는데, 아버지 사업이 잘 안돼서 대학에 갈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부터 만화만 그렸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나한테 가장 잘 맞는 건 등대지기더라. 사람 많지 않은 곳이고, 내가 좋아하는 바다를 볼 수 있고, 돈도 많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더라.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