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욱 기자: 자료를 보니 이 영화를 공동 연출한 존 말루프 감독은 사진작가, 역사가를 겸하고 있다. 여전히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들을 보존하고 세상에 공개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단다. 비범한 인물은 비범한 인물이 알아보는 법인가 보다. (웃음)
이명희: 죽어서 사진작가로서의 꿈을 이루고, 이제 신화로 재탄생했으니 그녀의 삶은 진정한 의미에서 성공적이다. 비비안 마이어의 삶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유모, 가정부, 간병인으로 살았다는 사실밖에 알려진 게 없는데, 수십 만 장의 방대한 필름을 남겼고, 살아 생전 그것을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았다니.
이진욱: 염세주의로 유명한 철학자 쇼펜하우어(1788~1860)는 평생 고독하게 살다가 말년에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행복한 여생을 보냈다더라. 이런 경우를 보면 주변에서 '나'를 알아 준다는 건 대단한 삶의 동력이 아닐까 싶다. 비비안 마이어는 어떻게 평생 무명인의 삶을 견지했을까?
이명희: 그녀가 남긴 필름은 어림잡아 하루에 8장 이상씩 50년 동안 찍은 양이라고 한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50년 동안 쓴 일기처럼. 모든 일에서 치열하게 극단까지 갈 수 있는 건 진정한 예술가만이 할 수 있는 일 같다.
이명희: 사진계의 에밀리 디킨슨(1830~1886)이라고 불러도 될까? 평생 독신자, 은둔자였으며 세속적인 야심을 거부해 죽고 나서 발굴된 여류시인 에밀리 디킨슨처럼, 비비안 마이어는 신비하고 순수하다. 이는 자기 확신에 차 있고 자긍심 강한 예술가의 의도적인 삶으로 보인다.
이진욱: 에밀리 디킨슨은 당대 상류층이었던 것으로 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서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지식을 쌓았다던데, 비비안 마이어와는 결이 다르게 다가온다.
이명희: 그렇다. "나는 무명인입니다. 당신은 누구세요? 당신도 무명인인가요? 그럼 우리는 같은 처지인가요? (이하 생략)"라고 시를 썼던 에밀리 디킨슨은 가족도 있었고 경제적 여유도 있었다.
반면 비비안 마이어는 가족도 친지도 없이 고독하게 하류층으로 살다가 죽은 무명인이었다. 그녀의 사진들은 그녀가 한때 세상을 살았다는 증거물이다. 이제는 위대한 역사적 기록, 예술자산으로 바뀐 증거물 말이다.
이진욱: 비비안 마이어가 한참 사진을 찍던 때는 1950~70년대로, 당시 그녀가 살던 미국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헤게모니 국가로서 최고의 호황을 누리던 때다. 미국인들이 '아메리칸 드림'에 취해 중산층으로의 신분상승을 꿈꾸던 때, 비비안 마이어는 거리로 눈을 돌렸다. 개인적으로 그녀가 몹시 특별한 존재로 여겨지는 대목이다.
이진욱: 작가 황석영의 장편소설 '여울물 소리'에는 곪아터지기 직전의 조선 후기, 동학도로서 민중의 삶을 기록하고 전파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소설 속 인물이 그 일을 한 데는 물론 당대를 사는 소외된 지식인으로서 뚜렷한 소명의식을 지닌 측면도 있겠다.
하지만 집도, 사랑도 뒤로 한 채 자신의 일을 이어가는 데서는 삶을 예술로 만들어내는 장인의 특별함이 묻어난다. 이 영화를 보면서 황석영의 소설이 떠오른 데는 시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예술의 영역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어느 시대에나 있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다.
이명희: 영화 평론가가 사진을 논하기는 어렵지만, 감각과 유머로 가득찬 사진들, 따뜻하며 세심하고 애정이 넘치는 사진들은 1920년대, 30년대 앙드레 케르테츠가 찍은 몇몇 사진을 떠올리게 했다. '일상의 르뽀'라는 특징도 유사하다.
그녀가 거리의 흑인, 노숙자, 장애인, 아이들, 다친 동물, 깨지고 버려진 물건까지 사소한 것의 내면적 표정과 가슴 뭉클한 풍경들을 잡아내는 관찰력, 타인의 감정과 고통을 사진으로 공유하는 일관성에 놀라게 된다. 자기 자신을 찍은 사진들은 또 얼마나 독창적인가. 비비안 마이어가 얼마나 비범하고 독특한 인물이었는지 알아가는 재미가 영화에 있다.
이명희: 영화는 그녀의 사진작품을 감상하는 재미는 물론, 다양한 증언을 통해 그녀가 유모로 있으면서 사진을 찍기 위해 아이들을 도살장에 데려가기도 하고, 자신을 프랑스 사람이며 스파이라 했다는 사실 등 자기방어적인 삶을 살면서 기이한 언행을 보였다는 점을 알려 준다.
부유한 중산층 가정의 보모로 살며 사회의 문제에도 민감했던 그녀다. 예술가라는 특별한 계급의식을 지녔던 비비안 바이어는 자신의 정체성이 보통 미국인들과 확고히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이 다큐 영화는 경쾌하면서도 서글프다. 두터운 관객층을 꾸준히 극장으로 불러들일 것으로 보인다. 나 역시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영화다.
30일 개봉, 84분 상영, 전체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