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을 직감한 치과의사는 즉시 112에 신고해 물품보관소 위치를 알렸다. 마침 인근에서 근무중인 서울 서대문경찰서 교통안전계 소속 경찰관 2명이 지하철 구내로 뛰어들어가 돈을 비닐봉투에 담는 인출책을 현장에서 검거했다.
지방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일자리를 알아보던 이모(27·여) 씨는 인터넷 구직사이트에서 '간단 업무 고수익 알바'라는 글을 보고 전화를 했다가 졸지에 범죄자 신세로 전락했다.
회사는 이 씨에게 "인터넷 게임머니 환전회사인데 시키는 대로 돈을 찾으면 건당 1만5,000원을 주겠다"고 설명했다. 또 "돈을 인출한 뒤 명세표를 촬영해 즉시 전송하고 한곳에 10분 이상 머물지 말라"는 행동수칙도 알려줬다.
게임머니 환전회사라고 해 크게 의심하지 않은 이 씨는 회사의 지시에 따라 지난해 12월 16일부터 올해 1월 30일까지 퀵서비스로 받은 체크카드 90여장으로 모두 1억6천만원을 찾아 그 대가로 600만원을 벌었다. 하지만 이씨가 한 일은 전형적인 보이스피싱 인출책의 업무였고 결국 경찰에 붙잡혀 구속됐다.
서울 중랑경찰서 지능팀은 지난해 12월 대포통장으로 의심되는 물건이 배송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나섰다. 수상한 물건이 반복해 일정한 의뢰자에 의해 일정한 장소로 배송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경찰은 올해 1월16일 서울 구로역과 노량진에서 대포통장을 전달받는 인출책 2명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경찰청은 올해를 '전화금융사기 근절 원년'으로 선포하고 수사기획관을 팀장으로 하는 수사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보이스피싱 단속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13일 밝혔다.
또 기존의 신고포상금을 100만원에서 최고 1억원으로 100배 올리고 단순한 인출책도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는 등 강력 대응하기로 했다.
경찰이 보이스피싱 근절에 나선 것은 최근 들어 관련 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새로운 수법도 출현하는 등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1분기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는 2451건, 피해액은 31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86%, 93% 급증했다.
과거 보이스피싱은 상대적으로 세상 물정에 어두운 노령층을 노렸지만 이제는 사회변화상에 맞게 진화되며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지난해 발생한 보이스피싱의 피해자들의 연령층 분포를 살펴보면, 30대가 19.5%로 가장 많았다.
또 20대(18.8%), 60대(18.4%), 70대(15.5%), 50대(14.1%), 40대(12.7%) 등의 순으로 모든 연령대가 보이스피싱 범죄의 표적이 됐다.
수법도 단순히 세금 환급금을 주겠다거나 자녀를 납치했다는 기존 방식에서 고도로 진화했다.
최근에는 ▲금융기관을 사칭해 저금리로 대출해주겠다며 수수료를 먼저 입금하라거나 ▲ 피해자 계좌가 범죄에 사용됐다고 속여서 가짜 수사기관 홈페이지에 접속을 유도한 뒤 각종 개인·금융정보를 탈취 ▲ 아예 돈을 찾으라고 한 뒤 범인이 가짜 금융감독원 신분증을 들고 찾아가 안전금고에 보관해주겠다며 현금을 가져가는 등의 수법으로 교묘해지고 있다.
▲피싱 등으로 미리 확보한 개인·금융정보를 이용, 피해자의 전화번호를 범인의 전화로 착신전환 하고서 공인인증서를 재발급받아 예금을 인출하거나 ▲계약관계 납품업자로 가장해 싼값에 물건을 납품하겠다고 접근해 계약금만 받아 챙기는 일반 사기 수법과 연계된 신종 수법도 출현했다.
또 단순 부주의로 인출 아르바이트를 했더라도 즉시 신고하면 범죄 조직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뿐 아니라 신고포상금도 받을 수 있다며 적극적인 신고를 당부했다.
정용선 경찰청 수사국장은 "전화금융사기를 단순한 사기 범죄가 아니라 조직폭력과 같은 조직범죄로 간주해 강력하게 단속하겠다"며 "중국 등 외국과 공조수사를 통해 현지 총책까지 추적해 검거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청은 금융범죄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금융감독원과 '핫라인'을 설치하고 경찰의 수사결과와 금감원의 제도 개선을 연계하기로 했다.
두 기관은 전화금융사기, 보험사기, 불법 사금융 등에 대한 핫라인을 설치하고, 퇴직 수사경찰관을 자문역으로 임명하는 등 협력체계를 강화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