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과정에서 김준규 당시 검찰총장은 수사권 조정 합의안이 깨진 데 대한 검찰 내부의 반발에 직면해 임기 46일을 남겨놓고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김 총장은 퇴임의 변을 통해 "통제없는 수사 진행은 국민들의 생활과 재산, 그리고 신체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며 "경찰이 진정한 수사권을 원한다면 자치경찰, 주민경찰로 돌아가 시민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홍만표 당시 대검 기조부장과 김홍일 중수부장, 신종대 공안부장, 정병두 공판송무부장 등 대검 간부들도 일제히 사의를 표명했다. 인사와 재무 등이 분리된 경찰조직에 내사를 포함한 독자 수사권을 부여하면 사법경찰관들이 '승진 줄서기'에 급급해 수사가 왜곡될 수 있다는 논리도 이어졌다.
같은 해 말 이완규 서울남부지검 형사4부장도 '수사지휘권 침해조항을 막지 못한다면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사퇴하라'는 취지의 글을 내부게시판에 올린 뒤 사의를 표했다. 검찰 내 수사권 조정 이론가로 손꼽히는 이 부장의 사의표명은 검찰내 큰 충격을 줬다. 이 부장은 "언제부터 검찰이 총리실에 가서 수사지휘권을 구걸하는 조직이 되었냐"고 총리실 수정안에 적극 대응하지 못하는 지휘부를 다그쳤다.
당시 검찰청을 출입했던 기자는 검찰 논리에 익숙했다. 경찰이 독립적인 수사주체가 되면 일반 형사들이나 수사관들은 인사권을 쥔 서장, 지방청장 등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에 수사지침 하명이나 각종 유혹에 고스란히 노출된다고 믿었다. 사건이 검찰에 송치되기 전부터도 법리전문가인 검사의 지휘를 받아야 불필요한 공정성 논란이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독립적인 수사주체로 인정하라는 경찰의 반격도 만만찮았다. 조현오 당시 경찰청장을 비롯한 수뇌부는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한 대통령령 입법예고안이 수정되지 않으면 10만 경찰의 항의의 뜻을 담아 사퇴 의사를 표명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는 전국 일선 경찰서로 이어져 수사경찰들이 충북에 집결해 수갑을 반납하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수사 경과(警科)를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경찰도 급격히 늘었다. 검경 수사권 조정문제를 놓고 총리실이 내놓은 강제조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번 기회에 형사소송법 조항을 다시 한번 개정하자고 소리쳤다. 일부에서는 "검사의 지휘를 받으면서 준법 태업을 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2014년부터 현재까지 경찰청을 출입하면서는 당시 경찰의 반발 이유를 일부 이해하게 되었다. 검찰의 일방적인 수사지휘와 내사 통제, 경찰의 이의제기권 불인정 등은 오히려 검찰을 무소불위의 조직으로 만드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당시에 정확히 알지 못했던 것이다.
2015년 4월 9일 새벽 자원외교 비리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유서를 남기고 잠적했다. 자살을 암시하는 내용이 있었기에 경찰은 방범순찰대와 지원중대, 형사기동대 등 1400명을 총출동시켜 휴대폰 신호가 잡히는 서울 평창동 일대를 이잡듯 뒤졌다.
하지만 경찰은 제대로 된 변사사건 처리 절차를 밟지 않았다. 자살 원인을 밝히는 실마리가 될 자필 메모의 존재 자체도 숨겼다. 성 전 회장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메모에는 그가 정치권에 금품을 뿌렸다고 주장한 내용이 담겼는데, 김기춘·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포함한 유력 정치인의 이름과 구체적 금액이 기재돼 있었다.
이튿날, 성 전 회장이 자살 직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김기춘, 허태열 전 비서실장에게 각각 10만 달러와 7억원을 줬다"는 보도가 나오자 시신을 검안한 검찰이 먼저 메모의 존재를 밝혔고 그제서야 경찰도 메모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성 전 회장을 죽음으로 몰고 간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을, 경찰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무엇이 두려운지 눈치를 보며 끝까지 숨긴 셈이다.
경찰의 이후 해명은 더 가관이었다. 메가톤급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메모가 발견된 후 취재진의 항의가 이어지자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안경, 모자만 언급한 것이 아니고 '안경, 모자 등'이라고 했다"며 "(해당 메모가) 없다고는 하지 않았다"는 군색한 변명을 내놨다. '일반적인 변사사건 처리와 다르지 않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서울지방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워낙 긴박한 상황이었고 유서가 발견된 만큼 추가 메모를 빨리 인지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또 "전체적으로 검찰에서 수사가 진행중인 내용이라 알리기 힘들었다"며 변사사건의 처리 주체로서의 지위를 스스로 포기하는 듯한 발언도 내놨다.
경찰의 검찰 눈치보기식 좌충우돌 행동은, 성 전 회장이 시신으로 발견된 당일에도 다르지 않았다. 국민적 관심이 몰린 사건이었지만 서울지방경찰청과 종로경찰서는 사건 브리핑을 서로에게 떠넘기는 '폭탄돌리기' 추태까지 보였다.
종로경찰서 측은 사건브리핑을 서울지방경찰청에서 한다고 밝혔지만, 서울경찰청 측은 종로서가 관련 브리핑을 할 예정이라고 책임을 떠넘겼다. 지친 기자들이 두세번 확인했지만 종로서와 상위기관인 서울청은 '브리핑 부담'을 서로에게 전가하기만 했다. 결국 종로서 형사과장이 관련 브리핑을 진행했지만, 발견된 메모를 의도적으로 감췄다가 검찰 발표가 있고 나서야 이를 인정해 빈축을 사고 말았다.
수사는 베테랑들로 구성된 일선 경찰관들이 맡고 기소와 공판업무는 법리전문가인 검찰이 담당해야 한다는 경찰의 수사권 조정 논리는 적어도 성 전 회장 사망 당일에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검찰 눈치를 보며 정치적 파괴력이 큰 메모의 존재를 숨기기에 급급한 경찰의 씁쓸한 현실이 자리잡고 있었을 뿐이다. 경찰을 출입하는 기자라는 게 처음으로 창피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