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전문가들의 예상은 반반이었다. 그만큼 전력이 비슷했다. 특히 한국전력은 막판 기세가 너무나도 무서웠고, 현대건설도 1, 2위보다 단 1승이 적었을 뿐이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2위 팀들이 3위 팀들보다 확실히 강했다.
그 차이는 바로 세터였다.
사실 한국전력은 세터로 고민이 많았다. 권준형을 트레이드로 영입했지만, 시즌 중 현대캐피탈 권영민 트레이드를 시도했을 정도였다.
물론 기록만 보면 권준형과 OK저축은행 세터 이민규의 토스에 큰 차이는 없다. 권준형은 1, 2차전에서 183개의 토스 중 107개를 정확히 올렸다. 반면 이민규는 214개의 토스 가운데 115개가 정확히 배달됐다.
문제는 리시브가 흔들렸을 때다. 흔히 말하는 2단 공격을 얼마나 외국인 선수에게 잘 올려주느냐의 차이였다. 또 외국인 선수에 의존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 얼마나 과감하게 국내 선수를 활용하냐도 승부를 가른 요인이었다.
한국전력 신영철 감독은 "권준형의 토스 컨트롤이 흔들렸는데 이 부분이 가장 아쉽다. 앞으로 준형이가 거쳐야 할 부분"이라면서 "서브 리시브가 안 되면 어떻게 공격수에게 올려줄 것인지, 이 부분만 좋아진다면 더 성장할 수 있다. 그래도 준형이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 특히 준형이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OK저축은행 김세진 감독도 "역시 이민규가 좋은 세터"라면서 "두 팀이 박빙이었다. 세터에서 조금 차이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대건설 역시 세터가 고민이었다. 염혜선을 내부 FA로 잡고 주장까지 맡겼지만, 신인 드래프트에서 이다영을 뽑으며 둘을 경쟁시켰다.
기록에서도 IBK기업은행 김사니(211개 중 86개 성공)가 염혜선(242개 중 89개 성공)을 앞섰다. 게다가 염혜선이 폴리에게만 의존한 반면 김사니는 현대건설이 데스티니의 공격을 생각할 때, 박정아와 김희진에게도 토스를 돌렸다.
김사니는 1차전이 끝난 뒤 "편하게 하면 점수가 비슷해도 역으로 갈 수 있다"면서 "4세트에서 듀스로 30점이 넘었을 때는 역으로 박정아에게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이대로 가면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5세트로 가더라도 박정아에게 줬다"고 말했다.
1, 2차전을 합쳐 폴리는74점을 올렸다. 데스티니 역시 69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점유율은 폴리가 앞섰다. 1, 2차전에서 딱 84개씩 스파이크를 때리며 공격점유율이 58.13%를 차지했다.
정규리그 1위로 챔피언결정전에 올라간 삼성화재에는 유광우, 도로공사에는 이효희라는 걸출한 세터가 있다. 이민규는 국가대표 세터, 김사니는 해외 진출까지 한 세터다. 즉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라는 증거다. 플레이오프 역시 세터 싸움에서 승부가 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