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 리콴유, 그가 걸어온 길

2011년 싱가포르 리콴유(李光耀·91) 전 총리 모습 (사진=유튜브영상 캡처)
23일 타계한 싱가포르 리콴유(李光耀·91) 전 총리는 부존자원이 없는 도시국가 싱가포르를 세계적인 물류 및 금융중심지로 탈바꿈시킨 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로 불린다.

'국부(國父)' 리콴유는 1923년 영국 식민지 시절 싱가포르에서 부유한 화교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1949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소속인 피츠윌리엄 칼리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951년 귀국해 변호사로 개업했으며 1954년 인민행동당(PAP)을 창당해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그는 싱가포르가 영국으로부터 자치권을 획득한 1959년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자치정부 총리가 됐다.

이후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독립한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로 취임해 1990년 퇴임할 때까지 26년간 총리로 재직했다.

리 전 총리의 젊은 시절 (사진=유튜브영상 캡처)
취임 첫해 400달러에 불과하던 1인당 GDP(국내총생산)를 1990년 퇴임 당시 1만 2,750달러로 30배 이상 끌어올렸다.

지난해 싱가포르의 1인당 GDP는 5만 6,113달러로 세계 8위, 세계경제포럼(WEF) 조사 국가경쟁력은 세계 2위, 국제투명성기구 조사 국가청렴도는 세계 5위였다.

그는 세계 일류의 컨테이너 항구를 건설하고, 창이 국제공항을 건설하는 등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또 세계 유명 금융기관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싱가포르를 동남아시아 금융 중심지로 탈바꿈시켰다.

미국 CNN은 "리 전 총리는 모기가 들끓는 나라를 깨끗한 거리와 반짝이는 고층건물, 안정된 정부가 있는 경제적으로 번영한 금융센터로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많은 싱가포르 국민들이 리 전 총리의 죽음을 애도하며 거리에 꽃을 놓고 있다. (사진=유튜브영상 캡처)
CNN은 "리 전 총리의 생각이 국제적으로도 영향을 끼쳤다"며 "시장을 자유로운 손에 맡기기보다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던 리 전 총리식 자본주의는 중국의 괄목할만한 경제개혁에 청사진이 됐다"고 보도했다.

그는 유능한 인재의 공직 진출을 유도하고, 공무원들이 부정부패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보수를 지급했다.

뉴욕타임스는 "그는 부패를 줄이기 위해 장관, 판사 등 고위공무원들의 임금을 대폭 올려, 세계에서 공무원 중 가장 높은 임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펼쳤다"고 보도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리 전 총리가 장기집권을 하면서 자신의 반대 세력을 탄압하고 언론인을 감금하는 등 독재자의 모습도 함께 있는 정치인이라고 전했다.

영국 BBC는 "리 전 총리는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재판 없이 감금하고, 많은 기자들을 체포하는 등 언론을 통제해왔다"며 "그는 '언론의 자유보다 싱가포르의 통합이 더욱 중요하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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