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 사드 배치와 AIIB 가입을 요구하는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 끼어 양자택일을 요구받는 딜레마적인 상황이 눈앞에 닥친 것이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로선 매우 곤혹스럽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류젠차오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급)는 16일 이경수 외교부 차관보 등과 만나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 측의 깊은 우려를 직접화법으로 전달했다.
17일에는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이 차관보와 협의를 갖는다.
러셀 차관보는 중국 주도의 AIIB 가입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전하고 사드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할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의 압박이 본격화되고 있지만 정부의 대응은 ‘전략적 모호성’에 머물러있다.
사드 배치 문제의 경우 정부의 공식 입장은 미국으로부터의 요청도, 협의도, 결정된 바도 없다는 '3 NO'다. 또 AIIB 가입 여부는 경제적 실익 등을 검토해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물론 상당수 전문가들은 전략적 모호성이 강대국 사이에 낀 입장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고 유용한 점도 있다고 평가한다.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한쪽 편에 서지 않음으로써 예봉을 피하고 시간을 벌 수 있어서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며, 자칫 '양다리 걸치기'로 오해받아 미·중 양측 모두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 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조만간 도래할 선택의 순간에 대비해 보다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보다는 G2 시대의 전체적 외교 방향과 비전에 대한 정부 입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략적 모호성으로 인해 가려지는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사드 문제가 공론화되지 않음으로 인해 그 무기체계에 대한 기본적이고 객관적인 사실 확인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드의 배치 또는 구매와, 사드의 무기 성능 및 군사전략적 파급 효과 등에 대한 검토는 전혀 별개의 문제인데도 논의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1개 포대에만 1조원이 넘는 고가의 쇼핑을 하면서 제품 사양서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채 분위기에 휩쓸려 충동구매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셈이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정부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면서도 한편으론 사드 체계에 대한 객관적 검토와 토론의 장을 마련함으로써 실사구시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분간은 전략적 모호성의 유용함을 최대한 활용하되, 동시에 사드 도입 찬성반대 여부에 대한 과학적 근거와 논리를 마련해 협상력을 키우는 일종의 '투 트랙' 전략이다.
사드가 과연 중국에 위협이 되는지, 북한 핵미사일을 막기 위해서는 사드 밖에 없는지 등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어야 미국이든 중국이든 설득할 수 있다.
예컨대 사드와 비견되는 무기체계로 우리가 개발 중인 장거리지대공미사일(L-SAM)이나 해군 이지스함에서 운용 가능한 SM-3, 이스라엘 IAI와 미국 보잉사가 공동개발한 애로우(Arrow) 미사일체계 등이 있다. 사드만이 대안은 아닌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16일 한중 외교차관보 협의에서 '3 NO' 입장을 유지하는 한편, 사드 필요성이 거론되는 이유는 북한 위협 때문이란 논리도 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과 연계해 협상력을 높이려는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사드 문제를 포함한 미·중간 외교안보 딜레마의 근본 해법은 따로 있다.
당장의 외교적 시련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임기응변식 대처도 불가피하겠지만 향후 목표 지향점은 이전과 달라져야 한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통한 긴장 완화를 우리가 주도할 때 강대국이 끼어들 여지는 그만큼 줄어들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