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양천구의 대형마트 풍경. 저마다 공격적인 문구로 도배를 했다. 고객 정보 장사로 잃은 신뢰를 회복하겠다며 지난 12일 신선식품 연중 할인을 선언한 홈플러스의 경우 '확실히 싼 가격'을 강조하고 있다. 매장 곳곳에 "이마트보다 비싸면 계산대에서 바로 차액을 쿠폰으로 드립니다"라는 간판도 눈에 띈다.
맞불을 놓은 이마트는 홈플러스와 가격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신선식품 매대마다 일일이 표시하고 있었다. "홈플러스 전단가격보다 더 싸게 드립니다"라는 문구 아래 이마트 가격과 홈플러스 가격, 차액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그야말로 서로를 겨냥하는데 망설임이 없는 상황. 효과는 있을까. 당장 행사가 강화되는 상황이다보니 양사 모두 매출이 오르긴 했다. 홈플러스의 경우 할인행사를 시작한 12~14일까지 3일 간 매출과 1주 전인 5~7일 간 매출을 비교한 결과 신선식품 매출이 83% 뛰어올랐다.
괄목할 만한 신장률이지만 그간 악재로 인해 매출이 줄었던 것이 상쇄된 측면이 크다. 실제로 홈플러스가 고객 정보 장사 등으로 직격탄을 맞기 전인 전년 대비 매출 신장률이 23%라는 것을 감안하면, 타사와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할인경쟁 기간 이마트의 신선식품 매출신장률은 26%, 롯데마트는 21.7%다.
결국 강한 드라이브를 건 홈플러스나 정색하고 맞선 이마트, 맞대응을 자제한 롯데마트까지 비슷비슷한 결과물을 내놓은 셈이다.
실제로 이날 대형마트에서 만난 주부 하영미(43)씨는 "가격 경쟁이 있다는 게 소비자로서 좋은 점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가격을 일일이 비교해보면서 싼 곳을 찾아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50대 주부는 "근처에 홈플러스와 이마트가 있어서 다 와보는데, 특별히 어디가 더 싸다는 생각은 안든다"며 "대세 차이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혈투에 가까운 경쟁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는 4인 가족이 한꺼번에 구매에 나섰던 다량구매에서 소가족 소량구매로 소비패턴이 바뀌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많은 양을 구입한다면 10원 단위 할인까지도 소비자를 유인하는 요소가 되지만 그때 그때 필요한 것을 사는 요즘 추세에는 큰 의미가 없다.
시간에 쫓기는 맞벌이 직장인 부부들의 경우 이같은 경향은 더 두드러진다. 직장인 김지선(34)씨는 "신선식품의 경우 편의점이 대형마트보다 비싸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소포장에 집이나 직장 근처에서 언제든지 살 수 있기 때문에 그냥 편의점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앞서 벌어졌던 대형마트 간 가격전쟁으로 소비자들이 이미 학습이 된 측면도 있다. 대형마트들은 지난해 8월 21일 하룻동안 10원 단위로 꽃게 가격을 낮추는 등 종종 할인경쟁을 벌였지만, 피부로 느낄 만한 큰 차이는 없었다는 게 소비자들의 판단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경쟁도 상대를 압도하는 게 목표라기 보다는 뒤쳐지지 않는 쪽에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라면서 "얼마나 좋은 상품을 낮은 가격에 파느냐는 근본적인 고민이 강하게 표출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