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0일) 찌라시엔 리퍼트 주한미국 대사 퇴원 기자회견장에서 CBS노컷뉴스 기자가 커터칼을 압수당했다는 얘기가 올랐고, 순식간에 퍼져나갔습니다.
그 기자가 누구냐고요?
바로 접니다. 졸지에 인터넷을 도배하고 있는 ‘분홍 커터칼’을 가지고 있던 기자.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이었을까요?
어제는 모두 퇴원하는 리퍼트 미국 대사를 기다리는 자리였습니다. 초대형 이슈였던 만큼 기자실은 만원이었습니다. 오후 2시로 예정된 기자회견이 임박할 무렵 덩치가 큰 외국인이 기자회견장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지금 소지품 검사를 할 테니 잠시 기자회견장 밖으로 나가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미 취재 비표까지 받고 얼굴 확인까지 거쳐 기자회견장에 들어왔는데 또 다시 소지품 검사가 있다고 하자 기자들은 멘붕이었습니다. 사전에 전달된 내용도 없었고 개인 동의도 없었습니다.
기자회견장에 있던 경찰관도 당황하며 “다 신원이 확인된 사람들인데 본인의 동의 없이 가방까지 뒤지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제지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막무가내로 나가라는 미국대사관 측의 요구에 기자들은 쓰던 기사를 멈추고 밖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한 20분이 지났을까요? 다시 기자회견장에 들어갈 때도 소지품을 모두 꺼낸 뒤 전신 검색을 마치고서야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기자회견장 분위기는 뭔가 어수선했습니다. 누군가 뒤진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제 자리에 돌아오자 책상 위에 커터칼이 놓여 있었습니다. 분명 가방 속 필통 안에 있던 커터칼이었는데 책상 위에 올라와 있었습니다. 제가 칼을 다시 필통에 넣으려고 하자 옆에 서 있던 관계자가 “커터칼이 나와서 일단 압수하고 기자회견 종료 후 돌려주겠다”고 말하며 가져갔습니다.
왜 커터칼을 갖고 다니냐구요?
그냥 제 가방 속 필통에 색연필을 깎으려 늘 들어 있던 칼이었습니다. 이미 함께한 지 7년이 넘은 필통과 커터칼이었습니다. 비행기를 탈 때나 중요한 행사에서 커터칼은 당연히 압수 대상 물품이었기에 저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습니다. 다른 기자들도 자신의 소지품이 뒤짐을 당한 흔적을 발견하고 왜 사전 동의도 없이, 당사자가 자리에 없는 상태에서 가방까지 뒤진 것인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심지어 기자회견장에 지원을 나온 한국 경찰관도 전신 검색을 받아야 했습니다.
한차례 사고가 있었던 만큼 경호에 더욱 신경 써야 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당사자의 동의나 입회 없이 진행된 소지품 검사는 지나쳤다는 지적입니다. 한국 경찰까지 미 대사관측의 이런 행동을 제지하려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행여나 물건이 없어졌으면 어쩔 뻔했을까요?
같이 참석한 외신 기자들도 당혹스러워했습니다. 회견장 출입 시 당사자 동의하에 소지품을 검사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자리를 모두 비우게 한 뒤 일방적으로 이뤄진 검사는 처음 당해본다는 분위기였습니다.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아무리 수사기관이라도 동의나 영장 없이 수색하는 것은 형법상 강요죄가 성립될 수 있을 만큼 민감한 문제고, 형사소송, 민사소송 모두 가능한 사안이기도 합니다.
미 대사관측의 미숙한 경호 문제가 또한번 드러난 일화여서 하루종일 씁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