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머리에 흰색 운동화를 맞춰신은 이들은 자물쇠를 부수고 사무실에 들어가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미리 준비한 각목으로 사무실에서 자고 있던 대학생 박모 씨를 마구잡이로 때렸습니다. 심지어 다른 여성회원은 성폭행한 뒤 달아났습니다.
바로 1980년대 후반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우리마당 습격사건'입니다. 이 사건 열흘 전인 8월 6일에는 중앙일보 자매지였던 중앙경제신문의 오홍근 사회부장이 테러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말 그대로 '백색테러'가 난무하는 '공포의 시대'였죠.
1984년 김기종 대표에 의해 창립된 우리마당은 다양한 문화활동을 벌이던 재야단체였습니다. 특히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는 남북공동개최를 주장하는 한편, 문익환 목사 등과 함께 통일통화 큰잔치를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이 습격사건은 정황상 재야 문화운동에 대한 탄압 등 특정 목적을 지닌 범행일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괴한들은 사무실의 서류와 유인물을 뒤지다가 캠코더만 들고 달아났습니다. 카세트나 다른 물품은 건드리지도 않았죠. 또 1명이 현장을 지휘하고 1명이 밖에서 망을 봤는데 1, 2층의 주점을 지나쳐 3층 사무실을 범행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단순 강도범의 소행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캠코더가 없어진 점을 들며 단순 절도범에 의한 우발적 범행임을 강조했습니다. 주변 불량배와 동일수법 전과자들만 쫓다가 사건 초기 한 달을 허비합니다.
이런 사이 '오홍근 테러' 사건의 범인은 검거됩니다. 육군정보부대 소속의 현역군인 4명이었습니다. 군인이 언론사 부장을 테러한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는 '공포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국가안전기획부와 군은 연루 의혹을 완강히 부인했고, 사건은 묻히고 맙니다. 이듬해 3월 경찰이 서대문구 대현파출소에 설치돼 있던 수사본부를 해체하면서 이 사건은 영구미제로 남았습니다.
그러던 2004년 북파공작원 출신 이종일 씨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80년대 정치테러의 민낯을 폭로했습니다. 김영삼, 문익환 등 야당 정치인과 재야인사의 테러에 북파공작원이 동원됐으며 우리마당 사건도 북파공작원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반향은 없었습니다. 밝혀진 것은 전혀 없었고, 사건은 또 조용히 잊혀갔습니다.
김 대표는 2010년에는 주한 일본 대사에게 돌을 던져 형사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5년 만에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를 다시 공격했습니다. 미국 대사가 동맹국에서 이런 공격을 당한 것은 처음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김씨는 범행을 저지르고 병원으로 옮겨지는 도중에도 "전쟁 훈련에 반대한다"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백색테러'의 피해자 격에서 '한미동맹에 대한 공격자'로 전락한 김 대표의 처지가 기구하긴 하지만 생명을 위협하고 해를 가하는 행위는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되긴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