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재심의가 이뤄진다 해도 일정상 4월3일 이전에 모든 과정을 마무리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박근혜 대통령은 참석이 어려울 것이고, 총리의 참석조차 불투명합니다.
결국 재심의 논의는 제주의 민심만 들쑤셔 놓았습니다.
희생자 재심의는 4.3희생자 명단에 오른 1만4천231명 가운데 남로당 간부 출신 53명을 제외해야 한다는 보수 단체의 민원 때문에 시작됐습니다.
박 대통령이 4.3 추념식에 참석하려면 이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었습니다. 행정자치부 장․차관이 모두 나서서 이런 주장을 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제주 4.3관련 단체는 물론 제주도민 전체의 반발을 불러왔습니다.
이보다 앞서 새누리당 하태경의원은 4.3희생자 재심사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반발에 부딪치자 법안을 자진 철회했고, 원희룡 제주지사도 도지사 후보토론회에 참석해 재심사 얘기를 꺼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다음날 사과를 한 일도 있었습니다.
4.3 사건은 제주도민들에게는 건드려서는 안 되는 ‘역린’과도 같습니다. 제주도 사람들끼리는 사석에서 4.3과 관련된 얘기를 나누는 것은 금기입니다. 어느 집이던 4.3과 관련된 희생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주도에는 집집마다 제삿날이 모두 같다는 웃지 못할 얘기가 있습니다. 그만큼 희생자가 많았다는 말입니다. 4.3 당시 제주도민 전체의 1/3가량이 희생됐다는 불확실한 통계도 있을 정도입니다.
4.3사건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지만, 이념이 갈라놓은 한반도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4.3사건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이념을 떠나 모두 피해자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4.3을 바라볼 수는 없는 걸까요. 그 사람이 설사 남로당의 간부였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사실 이 문제에 관련해서는 박근혜 대통령도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입니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남로당에 가담한 혐의로 사형선고까지 받은 전력이 있지 않습니까.
이 사실은 최근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모 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증언록에서 밝힌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보다 전향적인 입장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4.3사건 당시 어린 아이까지 학살했다는 의혹을 받은 백색테러의 대명사 ‘서북청년단’이 대명천지 대한민국에서 다시 결성되는 것을 보면서, 역사의 선순환은 분명히 없다는 절망적인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 미국의 틈바구니에서 지난한 역사를 살아온 한반도 민초들의 겪은 비극적인 사건이 바로 4.3입니다.
이제는 달라진 걸까요.
미 국무부 차관 직함을 가진 웬디 셔면이라는 여성이 한중일 과거사 논쟁에 대해 은근 슬쩍 일본의 편을 드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불행한 상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일 아침에는 미국 대사가 한 민권운동가에게 피습을 당했습니다. 이젠 어떤 상황이 전개될까요. 걱정부터 앞섭니다.
지금 한반도 남쪽의 모습은 50년 전, 혹은 백년 전과 얼마나 달라진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