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에 부는 의료 한류…그 내막은 ?

[변상욱의 기자수첩]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박재홍의 뉴스쇼> '기자수첩'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박근혜 대통령과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이 3일 오후(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에르가궁에서 열린 협정서명식에 참석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박근혜 대통령이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 중동 4개국을 순방 중이다. 이번 순방에서 눈에 띄는 것은 보건의료 분야. 청와대 고용복지 수석이 순방길에 대통령을 수행하고 병원장들까지 따라 나섰다. 그 배경을 살피자면 이러하다.

쿠웨이트나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들은 국가장기비전 전략을 추진 중이다. 더 이상 석유가 성장의 동력이 되지 못한다는 가정 하에 산업 다각화에 나섰다. 오일머니가 언제까지고 쏟아져 들어온다면 무엇이든 수입해 쓰겠지만 그 한계를 잘 알기에 보건의료, 교육, 금융, 과학기술 등을 중점 육성하고 있다. 특히 보건의료 분야는 국민 의료수요가 급격히 늘면서 이들 국가들이 새롭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이다.

◇왜 중동 국가들에 의료수출이 먹히는가?

이들 나라에서 국민의료수요가 늘어나는 배경은 우선 인구 증가이다. 외국인도 계속해 유입되고 있고 인구가 고령화되는 것도 의료수요를 늘리고 있다. 또 기후가 덥기 때문에 국민의 생활패턴이 상대적으로 덜 움직이는 쪽이다. 결국 비만과 심장질환, 당뇨병 등 성인병을 키운다. 사우디는 비만율 세계 3위이고 당뇨병도 세계 3위이다. 이밖에 고혈압, 면역질환, 알러지 환자가 번지고 노인층의 폐암 등 흡연 관련 질환도 사회적으로 심각해지고 있다.


이들 중동국가들은 인구가 늘고 의료의 질을 높여야하는데 수준이 미치지 못하니 외국 의료기관으로 국민 환자를 내보낸다. 사우디는 1년에 20 만 명, 아랍에미리트 13만 명 정도가 해외 병원으로 진료.치유 차 나가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 4개 나라에서 우리나라에 보건의료와 관련해 찾아 온 환자와 의료관광객은 2013년에 2,500여 명이었다. 쓰고 간 진료비는 20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진료나 치료를 위해 가장 많이 방문하는 나라는 가까운 레바논이고 아시아로 치면 일찌감치 의료관광에 투자한 태국이다. 가난한 아랍.중동 국가들의 환자는 요르단으로 주로 가지만 부자 나라인 걸프국 환자는 레바논, 태국, 인도, 말레이시아, 독일, 영국, 미국으로 간다. 보건청 산하에 해외 치료부라는 부서가 따로 있어 전문가들이 심사를 해 외국으로 보내는데 환자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 지역 보건청이 전액 지원하는 환자도 있다. 전액 지원이면 의료비는 물론 환자 및 보호자의 여비, 생활비, 통역서비스비도 지원된다. 환자를 수송할 비행기까지 지원된다고 한다. 이걸 ‘환자 송출’이라고 부른다. 암 환자 송출이 가장 많고, 소아 심장환자, 척추 수술 환자, 정형외과 수술 환자, 재활치료 환자들이 많다.

우리나라는 아랍.중동 지역 환자들을 받아 진료를 펼치기도 하지만 따로 진출한 의료 사업들도 있다. 병원들은 아랍중동 지역에 새로 지은 병원의 위탁 운영권을 얻어낸다. 중동아랍 지역 의사들이 한국 병원에 와 연수하는 프로그램도 추진한다. 또 한국형 건강검진센터나 암센터 건립, 백신공장 설립 등도 추진 중이다. 서울대병원이 지난해에 UAE 왕립 셰이크 칼리파병원에서 5년간 1조원 규모 위탁 운영권을 따낸 것이 최근 가장 큰 성과였다. 수수료 수입과 의료진 교육 수입, 기술 전수에 따른 추가 수익도 예상된다.

또 예를 들자면 의료기기 시장이 있다. 아랍에미리트의 경우는 중동 내 의료기기 시장에서 규모 상으로 2위에 올라 있다. 관련 기자재 수입 증가율도 7%나 된다. 또 아랍 에미리트 두바이나 아부다비에서 먹히는 의료기기는 아랍중동으로 전파되어 나간다. 흔히 말하는 테스트 베드인 셈이니 이들 나라의 환자진료와 의사 연수사업은 의료기기 수출과 엮여 있다. 우리로서는 의사를 연수시키거나 환자를 돌볼 경우 우리 시스템과 우리 의료기기, 약품들을 계속 수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국제의료본부를 두고 이같은 사업의 지원과 기획을 맡고 산하에 중동사업센터가 따로 있다. 진료 치료 의료기기만 파는 건 아니다. 병원정보 시스템이 팔리기도 한다. 분당 서울대 병원과 sk 텔레콤, 이지케어텍 등이 컨소시엄으로 한국형 병원정보 시스템을 7천만 달러에 팔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일 오후(현지시간) 쿠웨이트 바얀궁에서 열린 한국-쿠웨이트 비즈니스 포럼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쫓고 쫓기는 의료 한류, 아직 멀었다

이것을 우리 보건의료 산업의 중동 한류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사실 늦었고 한류라 부르기에 아직은 거리가 멀다. 우리나라 의료에 대한 중동아랍국가들의 관심은 2011년 이후에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그 예로 아랍에미리트의 경우 우리나라에 대한 정부 송출환자는 2011년 10명 정도로 미미했다. 그러나 2013년에 351명으로 급증한 걸 보면 가능성은 있다.

의료보건 산업의 중동진출은 가격과 시간의 싸움이라는 측면을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 의료산업의 수준이 품질에 비해서 가격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서구 선진국에 비교해 그렇다는 것일 뿐 중국과 인도 등이 나서면 먹히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서둘러 시장을 파고들어 점유해 놓고 수준을 발전시키면서 중국 인도의 저가 경쟁을 뿌리쳐야 한다.

걸림돌은 또 있다. 중동.아랍국가들의 보건의료 정책은 궁극적으로는 자립과 글로벌화이다. 모든 중동국가들이 자국 내 국립병원 시스템과 진료의 질을 빨리 높여서 국내 환자들이 해외로 유출되는 걸 줄이려 하고 있다. 또 의료수준을 높인 뒤 관광과 연계시켜 융합된 경쟁력으로 글로벌 의료관광산업을 발전시키려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정부의 미약한 재정 때문에 의료분야를 민영화시키려는 추세지만 중동아랍 산유국들의 국가재정은 의료분야에 대한 국가적인 전략과 투자능력을 넉넉히 갖추고 있다. 때가 되면 우리에게 물러서 일정 정도 거리를 벌리도록 요구하고 우리는 떠밀려 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중동 국가들의 경제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지난 1월 세계은행이 발표한 중동 산유국의 재정 수입은 내리막길이다. 국내총생산이 10%에서 20%까지 줄어들고들 있다. 석유 생산국이라고 늘 사정이 좋은 건 아니다.

그래서 시간싸움인 것이다. 중국 등의 저가경쟁력이 쫓아오기 전 그리고 중동아랍국가들이 자생력을 키우기 전에 최대한 진출하고 빨리 교두보를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치적 홍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중동을 돌아보는 기회에 정확한 상황 파악과 대처, 정보분석과 지원책을 꼼꼼히 챙겨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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