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탈북한 이유도 먼저 남한에 정착한 친척과의 휴대전화 통화 때문이었는데, "여기(남한) 오면 일한 만큼 벌어먹고 살 수는 있다. 네가 돈 벌어서 보내면 거기(북한) 가족들이 먹고 살지 않겠냐"는 말에 결심을 굳혔다.
남한 생활 5년 만에 경기도의 한 중소기업에서 본부장 직함을 단 조수민(43·여·가명)씨는 법원 부동산 경매업도 병행하고 있다.
조씨는 "돈을 버는 게 성공"이라며 "번듯한 사업가가 되는 게 꿈이고, 이후에는 고아원이나 양로원도 세워 베풀고 싶다"고 했다.
◇ 정치적 망명→식량난 탈출→이주노동자 행렬
남북하나재단(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이 지난해 탈북자 1만 2777명을 상대로 실태조사(복수응답 가능)한 결과, 탈북동기로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라는 응답은 21.5%였다.
'식량 부족과 경제적 어려움'(47.6%), '자유를 찾아서'(32.2%)라는 응답이 여전히 높았지만 돈벌이가 탈북의 주요 목적이 된 것이다.
2년간 탈북 남성들을 대상으로 집단상담을 진행해온 누리심리상담연구소 정정애 소장은 "단순한 생계형 탈북에서 요즘은 돈을 많이 벌어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을 돕거나 데려와야 겠다는 현실적 목표를 갖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최근 북한의 암시장이 커지면서 시장경제를 경험한 이른바 '장마당(시장) 세대'가 남한에 와 더 쉽게 적응하고, 취업률도 높다는 학계 연구도 있다.
탈북의 현실적 목표는 북한에서 남한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변화를 줬다.
탈북자들이 겪은 남한에서의 경제활동 경험, 그리고 이들이 북한 가족에 보낸 돈과 휴대전화로 주고받은 통화 내용은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자본주의사회 일터'로 남한의 이미지를 바꿔놓고 있다.
◇ 새터는 일터일 뿐…"굶진 않아도 살긴 팍팍"
특히 "남한이 경제적으로 잘 사는 곳이라는 환상이 있었는데 냉엄한 자본주의 현실을 인식하기도 한다"고 이 보고서는 설명했다.
연구를 맡은 한양대 글로벌다문화연구원 김화순 연구위원은 "상당수 비정규직이거나 극히 적은 임금을 받으며 저소득층으로 살아가는 탈북자들이, 북한에 있는 가족과 전화통화로 '남한에 오면 굶진 않지만 이곳도 살기는 팍팍하다'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탈북 거품이 많이 빠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남북하나재단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의 고용률은 53.1%, 실업률은 6.2%로 남한 전체의 고용지표보다 낮았고, 월평균 소득은 147만 원으로 남한 전체 평균보다 76만 원이 적었다.
꾸준히 증가하던 연간 탈북자 수가 2700명을 돌파했다가 최근 3년여 동안 1500명 안팎으로 줄어든 것은 김정은 체제 이후 국경 경비 강화 탓도 있지만 남한 사회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남조선 판타지'는 이미 깨진 가운데, 남한은 자유를 품은 풍요의 '새터'가 아니라 탈북한 자신은 물론 가족의 생계를 위해 땀 흘려야 할 '일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