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인즉슨 이렇다. 오는 12일부터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리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4대륙 피겨 선수권대회가 응원 문구인 플래카드를 통제한다는 내용이다. 대회 조직위원회가 사전에 일괄적으로 배너(플래카드)를 받아 확인 뒤 대신 게재해주겠다는 것이다.
조직위가 써붙인 '경기장 내 배너 게재 정책'에 따르면 팬들은 임의로 플래카드를 사용할 수 없다. 강제로 회수될 수도 있다. 또 제출한다 해도 공간이 제한돼 있어 게재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내용이다.
팬들은 플래카드를 10일부터 14일까지 10시부터 17시까지 배너 제출함에 제출해야 한다. 대회 뒤인 16일 10시부터 14시까지 출입구 경비실에서 찾아갈 수 있다. 배너 제출함은 흔히 쓰레기를 담는 데 쓰이는 푸른 통이다.
일부 팬들은 음모론도 제기했다. "한국 피겨 팬은 거의 김연아 팬이나 다름 없는데 소치올림픽 스캔들에 대한 의사를 표시할까 봐 빙상연맹에서 겁을 내는 것 같다"면서 "수많은 방법으로 제소를 건의해도 연맹이 무시했는데 배너로도 표현할 수 없느냐"며 울분을 토했다.
이어 "그런 의견 때문에 단순히 경기를 참가하는 선수를 응원하는 배너도 제한하는 게 옳은 것인가"라면서 "표현의 자유는 개나 줘야 하는, 팬들의 의견을 억압하는 사회인가"라며 성토하기도 했다. "스포츠에까지 민주주의 역행 사건이 퍼졌다"는 표현도 있었다.
취재 결과 이같은 방침은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아닌 ISU가 내린 것으로 밝혀졌다. 연맹 관계자는 "이 대회는 전적으로 ISU가 주관한다"면서 "대회 코디네이터가 지침을 내렸기 때문에 우리는 따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연맹을 비난하는 분들이 계신데 우리와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다만 이런 방침이 직접적으로 김연아와 관련된 게 아니라는 의견이다. 일부 팬들이 제기한 소치올림픽 판정 관련해 껄끄러운 플래카드가 걸렸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선수 훈련이 시작된 지난 10일 오전 링크에는 선수 응원 문구가 걸려 있었다. 시설물 설치 등 대회 준비를 위해 지난 7일부터 안전 요원이 근무하면서 보안을 했던 상황이었음에도 플래카드가 걸린 것이다. 이에 코디네이터가 이같은 배너 관련 방침을 내렸다. 다만 해당 플래카드는 김연아와 관련된 문구가 아니라 김해진(과천고), 변세종(화정고) 등 다른 선수들의 응원용이었다.
연맹 관계자는 "공사를 하느라 경기장을 폐쇄했는데도 플래카드가 붙어 있어 관계자가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 "우리도 요원들이 항상 있었는데 팬들이 어떻게 들어갔지 신기했다"고 혀를 내둘렀다. 철통 보안도 뚫어낸 한국 피겨 팬들의 열정이 ISU의 지침까지 만들어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