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또 과거사 철퇴?…'아람회사건' 가족들 손배소송 파기

"피해자 복권 이후 가족된 부인과 자식들은 손해배상 대상 아냐"

대법원 (자료사진)
1980년대 초 고문과 증거조작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아람회 사건' 피해자 가족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이 또다시 소멸시효를 넘겼다며 사건을 파기하고 돌려보냈다.

최근 대법원이 5.18 민주화운동 관련 피해자들에게 6개월이 넘어 소송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한데 이어 또다시 비슷한 판결이 나온 것이다.

대법원이 이번 정권 들어 과거사 국가 배상 사건에 대해 엄격하게 판단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어 과거사 청산 취지에 역행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 아람회 사건 가족들 민사소송 모두 기각…부인·자식들은 배상 안돼 '매정한 판결'

대법원 1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아람회 사건' 피해자 가족 17명이 제기한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에서 16억2천만원을 지급하라는 원심을 모두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아람회 사건'은 80년대 대표적인 용공 조작 사건으로 박해전, 황보윤식, 김창근씨 등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에 관한 유인물을 배포하다가 연행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피해자의 딸 아람양의 백일잔치에 모인 것을 반국가단체를 조직했다고 해 '아람회 사건'이라 불린다.

1심 재판부는 아람회 사건 피해자 가족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황보윤식씨 가족 등에게 9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으며, 2심은 부모 형제 뿐 아니라 부인과 자녀도 보상받을 수 있다며 배상금 16억2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을 모두 기각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황보씨 등 피해자 가족 14명에 대해 "형사보상결정이 확정된 2010년 10월부터 6개월이 지난 2011년 4월에서야 비로소 소를 제기했다"며 "소멸시효 항변의 권리남용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판단했다.

즉,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소멸시효 기간 6개월 내에 권리행사를 해야한다"며 1개월 늦게 소송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소송 자체를 위법이라 판단한 것이다.

소멸시효 6개월 이내 소송을 제기한 김창근씨의 부인과 자녀 등 3명의 경우에도 김씨가 사면 복권된 이후 결혼으로 맺어진 가족들이라 손해배상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와 가족관계를 맺고 있는 상태에서 국가 불법행위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는 것이 증명돼야 한다"며 "83년 복권된 이후 87년에 결혼해 90년도에 자녀를 출산했기 때문에 이후에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앞서 2심(서울고등법원 민사합의 24부)은 "피해자가 아람회 사건으로 특수 공안사건의 전과자로 낙인찍혀 자유로이 직업을 선택할 수 없게 돼 가족 전체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며 김씨 부인과 자식들에게도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다시 뒤집었다.

결국 대법원의 판결로 아람회 사건 피해자 가족 전원은 2011년부터 4년째 이어진 소송전에도 불구하고 손해배상을 단 한 푼도 받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 소멸시효 단축하고 국가 배상 책임 줄이고…대법원서 줄줄이 기각

과거사위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엄격한 판단 기조는 계속되고 있다. 국가 배상 소송 소멸시효를 3년에서 6개월로 줄인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 2013년 5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진도군 민간인 희생사건' 판결에서 소멸시효 기간을 민법상 시효정지 기간인 '6개월 이내'로 준용해야한다고 첫 판단을 내리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일반적인 민법상 손해배상 소멸시효는 3년인데, 이보다 훨씬 짧은 시효정지 기간 6개월을 준용해 법리 판단을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형사 판결 뒤 6개월 이내 소를 제기하지 않은 사건들은 대법원에서 줄줄이 기각되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달 5.18 관련 피해자인 김모씨의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시효정지 기간인 6개월 이내에 소를 제기하지 않았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고등법원에 돌려보낸바 있다.

소멸시효 단축 뿐 아니라 국가 배상 범위도 대법원에서 점차 축소되는 분위기다.

지난달에는 "생활지원금 등 일부 보상을 받은 경우에는 화해로 간주돼 손해배상을 받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도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문인 간첩단 사건' 피해자 문학평론가 김우종씨 등 7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면서 이같은 논리를 전개했다.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보상금 지급결정에 동의한 때에는, 위자료를 포함해 피해 일체에 대해 재판상 화해한 것과 동일한 효력이 발생한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소액의 피해 보상금을 받았다고,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 자체가 무효가 된다는 것이어서 대법원 판단을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대법원이 현 정권 들어 엄격한 법리 판단으로 과거사위 사건을 무더기 파기함에 따라 재야 단체와 법조계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거세다.

민변 소속 박주민 변호사는 "대법원이 국가 배상 책임을 줄이려는 기계적인 판결들을 쏟아내고 있는데 이는 과거사 청산을 통한 국민 화해와 통합의 흐름에 역행하는 근시안적인 판결"이라며 "최근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담당 검사인 박상옥 변호사가 대법관 후보에 추천되는 등 대법관 구성이 보수화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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