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가 인질로 잡고 있다가 지난 1일 살해한 고토 씨는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중동이나 북아프리카, 아프가니스탄 등 세계 각국의 분쟁지역을 취재해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평화와 인권의 중요성을 알려왔다.
고토 씨가 살해된 뒤 어머니를 비롯해 그의 가족들이 분노와 복수 보다는 "아들의 이 같은 신념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며 평화의 메시지를 던지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 것도 그의 이 같은 삶을 추모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고토 씨와 그의 가족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그의 죽음을 집단자위권 행사 추진 등 전쟁에 대비한 군사력 확장에 이용하려 하고 있어 오히려 주변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지난 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상대국 동의가 있을 경우 무기를 사용해 자국민을 구출할 수 있도록 법 정비에 나설 것"이라며 "지리적인 이유로 자위대 활동 영역이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는 IS의 고토 씨 살해 사건이 집단자위권 행사 지지기반을 다질 기회로 판단하고 집단자위권 행사 범위를 오히려 늘이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내에서마저 "고토의 죽음조차 이미 안보 논의와 같은 정치적 게임에 이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미국과 영국 등 서방국가들이 IS와의 전쟁에 돌입한 상황에서 IS에 의한 자국민 살해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일본이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집단자위권 행사 추진을 서두르는 것에 대해 대놓고 반대할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동안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 추진에 공개적으로 지지의사를 밝혀 왔던 미국이 IS와의 전쟁 한복판에 서있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의 입장은 더욱 곤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우리 정부가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 추진에 대해 손 놓고 있을 수만도 없는 형편이다. 현재 일본과 북한 사이에는 일본인 납북자 문제가 남아있고 일본은 이를 집단자위권 행사 추진과 연계할 가능성이 있다.
다시 말해, 일본 정부가 IS의 자국민 납치·살해를 계기로 자국민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집단자위권 행사 추진의 또 다른 명분으로 삼는 동시에 이를 빌미로 한반도 안보상황에 개입하려 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지적에 우리 정부는 현재 상황을 예의주시 하면서도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언론의 지적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면서도 "현재로서는 어떤 입장을 밝힐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