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들은 잔뜩 화가 나 있고 좌절한 영화제작자들도 울분을 삼키고 있습니다. CBS 노컷뉴스가 화려함 속에 감춰진 한국 영화의 불편한 민낯을 연속 보도합니다. [편집자 주]
지난달 30일 오후 2시쯤 친구들과 함께 서울 자양동에 있는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을 찾은 대학생 김모(21)씨는 입장권에 표시된 영화 시작 시간을 6분이나 넘겼는데도 상영관 밖에 나와 있었다.
"영화 시작하기 전에 10분 정도 광고를 틀어 주잖아요. 처음에는 멋모르고 표시된 상영시간보다 5분 정도 일찍 들어갔다가 보기 싫은 광고 다 봤던 경험이 있어요. 이제는 아예 표시 시간보다 늦게 들어가는 게 습관이 됐죠."
이러한 김씨의 말에 옆에 있는 친구들도 "광고 진짜 보기 싫다" "너무 많이 틀어요"라며 한마디씩 거든다.
멀티플렉스에 한 번이라도 가본 관객이라면 누구나 영화 시작 전 '광고 홍수'에 휩쓸렸던 경험 들이 있을 것이다.
멀티플렉스에서는 광고 상영 탓에 실제 영화 상영시간이 입장권에 표시된 것보다 평균 11분 늦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소비자문제연구소 컨슈머리서치가 지난해 9월 20, 21일 이틀간 영화 '타짜-신의 손'과 '두근두근 내 인생'을 상영하는 서울시내 CJ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6곳을 조사한 결과다.
결국 입장권에 표시된 시간에 맞춰 입장한 관객은 11분 동안 22건에 달하는 광고를 강제로 보게 되는 셈이다.
다음 아고라에 문을 연 '영화관에 불만 있는 시민·네티즌 다 모여라'라는 제목의 기획토론방에는 2일 현재 100여 건의 참여글이 올라와 있는데, 긴 광고시간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글이 20건을 훌쩍 넘겼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청년유니온과 함께 이 토론방을 공동 개설한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최인숙 팀장은 "멀티플렉스 측은 입장권에 '영화가 10분 정도 지연 상영될 수 있다'는 문구를 넣었기에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라며 "하지만 관건은 시민·소비자들이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한 채 원치 않는 광고를 보고 있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관객 입장에서는 영화 러닝타임에 광고 상영시간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극장 측으로부터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민변 성춘일 변호사는 "이는 소비자의 선택에 중요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을 축소하거나 누락한 기만적인 광고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표시광고법 위반 소지가 다분하고, 거래상 지위를 남용해 소비자 동의 없이 시간을 낭비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공정거배법 위반 소지도 있다"며 "이들 광고 대부분이 상업적 광고라는 점에서 극장 이익으로 잡히는데, 결국 앉아서 돈을 벌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멀티틀렉스 측이 영화 관람 등급을 무시한 채, 가족 관객이 보는 영화에서조차 성인을 대상으로 한 광고를 주로 상영하는 것도 불쾌감을 주는 문제라고 성 변호사는 지목했다.
그는 "극장용 광고는 다른 분야의 광고에 비해 관객의 회피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는데, 그렇기 때문에 더욱 소비자 동의를 얻어야 할 사항"이라며 "입장권 예매 홈페이지는 물론 극장 현장 전광판에도 광고 시간을 뺀 영화 상영시간을 정확하게 표시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선택권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CGV 관계자는 이에 대해 "CGV의 영화 가격은 전세계에서 인도를 제외하면 가장 낮은 수준"이라면서 "영화 상영 전 광고에 대한 제약이 따를 경우 이는 자연스럽게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CGV의 경우는 광고 상영시간을 10분 이내로 제한하고 대출과 성형 등의 광고는 하지 않는다는 자체기준을 준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CGV는 지난해 약 1조원대의 매출을 올렸으며 이 가운데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매출액의 약 10%인 1000억원 안팎으로 예상된다. 또 영업이익도 50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사당동에 있는 예술 영화관 아트나인을 운영하는 엣나인필름 정상진 대표는 영화 상영 전 광고를 틀지 않는다.
정 대표는 "아트나인은 태생 자체가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곳으로, 이곳에 오는 관객들은 보고 싶은 영화를 찾아서 오는, 분명한 자기 의사를 지닌 분들"이라며 "솔직히 업체로부터 광고 제안을 받는다. 하지만 예술영화관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공익적인 목적을 품고 있는데, 이곳에서 대기업 광고를 덥석 받아서 틀면 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그는 요즘 '광고를 상영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고민에 빠져 있다.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해 전국에서 문을 닫는 예술 영화관들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영화관을 지속할 수 있는 대안을 찾기 위해서란다.
정 대표는 "매달 예술영화관 모임을 갖는데, 높아지는 인건비와 근로기준법 상 심야수당 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최근 매표소 인력 한 명 분의 인건비만이라도 광고 수익으로 충당해 보자는 의견이 나왔다"며 "상업광고를 할 수는 없고, 지자체 등의 공익광고를 받아 인건비 보조를 받아 보자는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멀티플렉스를 운영해 본 경험이 있는 정 대표는 광고 수익에 목말라 하는 대형극장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했다.
그는 "멀티플렉스도 직영점과 위탁점이 있는데, 직영점 위주로 광고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지역 위탁점의 경우 그 혜택을 거의 못 본다"며 "극장들은 계속 경쟁을 하다보니 설비·인테리어 투자에 막대한 돈을 들이지만, 입장료는 1998년 이래 거의 변화가 없으니 지방 극장, 위탁점일수록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단적인 예로, 과거 극장 사업을 선도한 서울극장과 대한극장은 지금 입장료만으로는 운영을 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상황"이라며 "조명을 낮추고, 엘리베이터 운행도 줄이는 등의 조치로 인해 윤택한 멀티플렉스를 경험해 본 관객들은 불편을 호소하는데, 그나마 이들 두 극장은 자기 건물을 갖고 있기에 살아 남은 것"이라고 전했다.
결국 정 대표는 극장 운영에 있어서 광고가 영화 관람료 상승을 막는 '필요악'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영화 러닝타임에 광고시간을 포함시키는 것은 "관객을 속이는 것"이라고 정 대표는 지적했다.
그는 "중요한 것은 관객이 선택을 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인데, 얼마 동안 광고를 상영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 줘야 한다"며 "지금 제 앞에 서울극장 티켓이 있는데, '본 영화는 정시에 시작한다. 상영 시작 10분 전부터 입장이 가능하다'고 표시돼 있다. 결국 관객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는 게 해법"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