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두리가 질주할 때마다 붉은 악마는 열광했다. 목청을 높여 차두리의 이름을 연호했다. 2015 호주 아시안컵 대회 내내 그랬다. 31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호주와의 결승전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 응원단이 차두리의 이름을 외칠 때 호주 응원단은 조용히 듣기만 했다. 차두리가 피치에 남긴 여운은 그만큼 강렬했다.
호주와의 결승전 전반 38분. 차두리가 공격에 가담해 오른쪽 측면을 뚫었다. 폭발적인 질주가 시작됐다. 차두리의 크로스는 손흥민에게 완벽한 슈팅 기회를 제공했다. 호주 수비수가 몸을 날려 간신히 막았다.
후반 21분, 차두리가 공을 톡톡 위로 차며 다시 한번 질주를 펼쳤다. 결국 수비 벽에 막혔지만 마치 공간을 지배하듯이 순식간에 앞으로 전진한 '차미네이터'의 플레이는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차두리는 대회 내내 그랬다. 쿠웨이트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 날카로운 돌파에 이은 크로스로 남태희의 결승골을 도왔다. 우즈베키스탄을 상대한 8강전 연장전에서는 약 70m 가까이 드리블 돌파를 펼치더니 손흥민의 쐐기골을 만들어냈다.
차두리는 이번 대회를 끝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매경기가 소중했다. 후회를 남기지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다.
1-2로 뒤진 연장전 전반 후반, 차두리의 경기는 그 순간에도 빛났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종료 휘슬이 울리고 차두리는 팬들에게 박수를 건네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현장 관계자에 따르면 차두리는 팬들과 인사를 나눈 뒤 진한 눈물을 흘렸다.
차두리가 아시안컵에서 보여준 질주에 팬들을 왜 열광했을까.
지난 해 브라질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 처참한 실패로 끝난 월드컵 도전, 대회 이후의 실망스러웠던 한국 축구의 행보 등 축구 팬들에게 2014년은 잊고 싶은 한 해다. 답답한 행보가 계속 됐다.
아시안컵 대회 초반까지도 그랬다. 시원한 경기 내용을 볼 수 없었다. 바로 그때 차두리의 질주가 시작됐다. 답답했던 한국 축구는 속이 뻥 뚫렸다. 차두리가 달리기 시작하면 쾌감이 극대화됐다. 비록 골로 연결되지는 않아도 마음만큼은 시원했다.
차두리는 긍정의 아이콘이다. 차두리의 밝은 성격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미소짓게 만들곤 했다. 피치에서는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2010년 남아공월드컵 사상 첫 원정 16강 등 차두리의 미소는 한국 축구의 영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