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로 살면서 제 존재감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잖아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건데, 대중의 응원까지 받고 있으니 행운아죠. 그만큼 책임감도 커지는 것 같아요. 진심을 갖고 연기에 임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거든요."
그는 연기를 "카멜레온"에 비유했다.
"알기 힘든 친구 같아요. 어렵다가도 순간 순간 쉬운 감정들이 있어요. 집에서 분석하면서 한참 헤매다가 현장에 가서 풀리는 경우도 있고요. 옆에서 저를 항상 즐겁게 만들어 주는 셈이죠."
여진구는 "가끔 빨리 나이를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단다. "20대, 30대 배우로서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 생각하면 소름이 돋을 만큼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렌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10대의 끝에 다다른 여진구는 이미 20대를 맛봤다. 28일 개봉하는 '내 심장을 쏴라'(감독 문제용·제작 ㈜주피터필름)에서 분투하는 청춘 수명을 연기한 덕이다.
23일 서울 삼청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여진구는 "수명을 연기하면서 나이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고 했다.
"수명은 나이가 많지만 사회성이 없는 친구잖아요. 직장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대인관계를 기피하는 캐릭터여서 제 경험을 믿었어요. 사회성이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편하기까지 했죠.
실제 성격은 도전을 즐기는 승민에 가깝지만, 오히려 수명에게 끌렸다고 여진구는 전했다.
"처음 시나리오를 접했을 때 수명이라는 인물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느낌으로요.
이 영화를 선택한 데도 실제 저랑은 완전히 다른 수명에 대한 호기심이 가장 크게 작용했어요. '수명은 왜 이렇게 지내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컸거든요."
내 심장을 쏴라는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뒀다. 한국 사회의 축소판 격인 정신병원을 무대로 자신들을 억압하는 부조리에 맞서는 두 남자의 치열한 싸움을 스크린으로 옮긴 것이다.
"저에게 수명은 감정을 극대화시킨 캐릭터로 다가왔어요. 인간 내면의 두려움과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는 불안 탓에 극한의 상황에 처한 인물을 표현하고 싶었죠."
그는 원작 소설을 쓴 작가 정유정과도 만나 캐릭터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작가님에게 물어볼 게 많았어요. 무엇보다 '다른 건 다 편하게 하면 되는데, 수명이 똑똑한 친구라는 것만 알아 달라'고 하셔서 당황했죠. 저는 당시 세상에서 도망치려 하는, 존재감 없는 인물로만 수명을 이해하고 있었거든요. 생각지도 못했던 걸 알려 주셔서 고마웠죠."
"우리 영화를 보시는 관객들이 꿈을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감독님과 민기 형이 '현실이 힘들다보니 언제부턴가 청춘들이 꿈을 잊고 사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뉴스를 보면 20대, 30대는 취업과 같은 수많은 경쟁 속에서 지쳐가는 것 같아요. 제 친구들만 봐도 학원, 입시에 치이는 모습에 안타까워요."
여진구는 배우로서 친구들과는 다소 다른 일상을 산다. 그 덕에 관찰자로서 또래를 바라볼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여진구의 눈에 비친 고3 친구들의 모습은 "무표정"으로 압축된다.
"친구들이 너무 쫓기면서 사는 걸 보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무표정해요. 한참 웃고 울고 하면서 신나게 휘몰아칠 나이에 무표정하게 있는 친구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아프니까 청춘'이라는데 아플 수도 있고, 안 아플 수도 있잖아요. 청춘은 아파도 된다고 보지만, 연기로 그 아픔을 간접 경험한 제 입장에서 그리 반가운 감정은 아닌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