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 집표기는 고속철도 승차권을 집어 넣으면 지하철 개찰구처럼 자동으로 차단 칸막이가 열리면서 승차권 검사를 하는 시스템. 지난 2003년 8월 고속철도 주요 역사에 설치되기 시작해 현재 서울역 27대, 광명역 48대, 천안아산역 24대 등 고속철도 주요 정차역에 모두 262대가 설치돼 있다. 대당 2천만 원에서 4천만 원인 이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코레일측은 60억원에 이르는 예산을 투입했다.
하지만 막대한 혈세를 투입해 만든 이 시스템이 제대로 쓰여지지 않고 있다. 서울역의 경우 ''승차권을 넣지 말고 들어 가세요''라는 안내문까지 붙여놓고 자동 집표기를 아예 열어 놓은 채 사용하지 않고 있다. 고속철도의 종착역인 부산역도 사정은 마찬가지. 자동 집표기 대신 역무원이 일일이 손으로 승차권을 받아내고 있었다.
부산역 관계자는 "개통 초기부터 기계 오류가 많아 승객이 많을 때면 기계를 열어 놓고 있다"며 "승객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기계에 승차권이 계속 걸리면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걸림현상''이 수시로 발생하면서 승객들의 항의가 잇따라 자동 집표기 사용을 자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도 코레일측은 자동 집표기 시스템의 유지보수를 위해 한해 3억원씩을 별도로 쏟아 붓고 있다.
코레일의 또다른 관계자도 "2,3년전부터 티켓리스(ticketless)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 이 제도가 정착되면 자동 집표기는 불필요하다"고 밝혔다. 티켓리스 제도는 기존의 종이 승차권 대신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로 ''전자 승차권''을 내려 받아 고속철도를 이용하는 것이다.
결국 자동 집표기를 설치해 놓고 1,2년도 지나지 않아 자동 집표기가 필요없는 승차제도를 시행한 셈으로, 코레일이 주먹구구식으로 예산을 운영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취재가 시작되자 코레일측은 "아직 폐기 여부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며 한발 물러섰다. 코레일의 또다른 관계자는 "자동 집표기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철거하지 않고 차단문 형태로 남겨둘 수도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차단문 만드려고 60억원이라는 거액을 투입했느냐''는 비난은 여전히 남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