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년 째 수도권의 한 대형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이모(22)씨는 최근 일어난 '백화점 갑질 모녀 사건'이 낯설지 않았다. 주말처럼 차들이 줄줄이 밀려오는 날에는 '갑'들의 횡포가 늘 도를 넘기 때문이다.
고상한 옷을 입은 VIP 고객들이지만 여성들은 "무엇 때문에 밀리는거냐"고 소리지르기 일쑤고, 남성들이 얼굴을 붉히다 욕설을 내뱉는 일도 드물지 않다.
한모(21)씨도 집안 사정 때문에 같은 백화점에서 주차장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는 "죽어도 남 생각 안 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차를 바라보고 주차 유도를 할라치면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적도 있다"고 회상했다.
한씨는 'VIP고객인데 주차공간을 왜 따로 마련해놓지 않느냐'며 삿대질하고 짜증을 내는 이들을 떠올리면서는 "돈은 많지만 그게 전부인 불쌍한 사람이지 않느냐"고도 했다.
이처럼 백화점 주차장 아르바이트생 대부분은 20대 초중반으로, 백화점에서 하청을 준 용역업체 소속이다.
아르바이트생들은 고객 중 가장 최상급인 VIP 고객에겐 절대적 '을'일 수밖에 없다. 구매력 있는 고객들이 던지는 "널 당장 그만두게 하겠다"는 한마디가 곧 그들의 목을 조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갑질의 횡포'로 일을 그만 두고 모욕죄로 고소까지 당했다는 글도 올라왔다.
부산의 한 백화점에서 VIP 주차 요원으로 근무했다는 이가, 차량의 발렛 파킹 여부를 확인하려다 고객으로부터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들었다는 것. 다툼 끝에 결국 퇴사한 그는 모욕죄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동료 근무자의 증언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사연의 주인공은 "서비스직은 정말 참담하다. 특히 우리 같은 알바생은 더하다. 무조건 고객들에게 잘못했다고 하라 한다"며 속상한 마음을 털어놨다.
부촌으로 꼽히는 서울 동부이촌동의 한 아파트에서는 얼마전 갑작스레 경비원 감축 방침이 정해졌다.
이러한 내용의 입주자대표회의 통보문이 아파트에 나붙자 경비원들은 자신이 해고 대상이 꼽히는 게 아닐까 전전긍긍이다.
경비원 A씨는 "요즘 갑질이란 말이 많이 나오지 않느냐"라며 "갑의 의향이면 할 수 없다. 나가라면 나가는 거다"라고 씁쓸해했다.
그는 "경비일 하려면 들어도 못 들은 척하고, 간을 빼놓아야 한다"면서 "조금만 싫은 소리를 해도 민원이 되고, 주민들로부터 '내가 월급을 주는데 그렇게 하냐'는 말이 나온다"고 했다.
일부 주민들은 경비원 감축에 반대하고 나섰지만 입주자대표회의 결정을 되돌릴 수 있을지 미지수다.
주민 송모 씨는 "6~7년간 알고 지낸 분들인데, 갑자기 일방적으로 자르겠다는 행태가 전형적인 '갑질' 아니냐"며 "그런데도 피해가 갈까봐 아무말도 못하는 분들이 울먹이는 걸 보니 씁쓸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갑 중의 갑'을 상대로 노동하는 '을 중의 을'은, 넘기 어려운 신분의 벽 끝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 눈물만 삼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