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영화 부활했다"는 정부 자랑질이 불편한 이유

[기자의 창] 다양성 보루 독립영화 "곧 죽겠다" 외침 못 듣나, 안 듣나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31일 보도자료를 통해 올해 한국영화산업을 결산하면서 "주목할 만한 것은 다양성영화시장의 부활"이라고 전했다.

"다양성영화시장 전체 통계를 보면 2009년에 1000만 관객을 달성한 이후 줄곧 관객 수가 줄어들었으나, 올해는 30일 기준으로 1491만 명을 기록해 지난해 343만 명보다 3배 이상 증가했다"는 것이다.

1491만 명이 다양성영화를 봤다는 수치는 고무적이다. 하지만 그 속을 잠시라도 들여다보면 다양성영화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한국산 독립영화의 처지가 얼마나 비참한지를 알 수 있다.

문체부가 비참한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화려한 겉옷으로 포장하는 데 급급했다는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한국영화 다양성의 보루인 독립영화계는 스스로 생사의 기로에 섰다고 말한다. 최근 독립영화 진영의 한 관계자는 "곧 죽을 판이다"라는 표현으로 암담한 현실을 전해 왔다.

이날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올해 소개된 다양성영화 가운데 전날까지 관객수 30만 명을 넘긴 작품은 고작 5편이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관객수 373만 2437명·이하 님아)' '비긴 어게인(342만 7520명)'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77만 4699명)' '신이 보낸 사람(42만 4258명)' '그녀(35만 618명)'가 그 면면.

올해 다양성영화 전체 관객수가 1491명이니, 위 5편 영화의 관객수(834만 명)가 전체의 56%를 점유한 셈이 된다.

이 통계에 포함된 다양성영화는 모두 944편이다. 결국 939편의 영화가 나머지 44%의 관객 점유율을 나눠 가진 것인데, 다양성영화 안에서도 극심한 양극화 현상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독립영화협회는 "영화마다 손익분기점이 틀리지만 작품당 관객수 5, 6만 명, 더 나아가 평균 10만 명은 돼야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자리잡을 수 있다"고 전한다.

하지만 영진위 집계를 보면, 관객 1만 명을 넘긴 한국산 다양성영화는 28편에 불과하다. 지난 5일 막을 내린 '서울독립영화제 2014'에 접수됐던 장·단편 독립영화만 1000여 편에 달하는데, 한 작품 만들고 사라지는 독립영화 감독들이 부지기수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독립영화 전용 상영관 탓이 크다.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다양성영화 전용관에 작품이 걸리느냐, 마느냐에 따라 흥행이 결정된다는 것은 결코 빈 말이 아니다.

전국에 문을 연 독립영화전용관은 단 5곳. 민간에서 운영하는 서울 광화문의 인디스페이스와 영진위 직영인 서울 강남구 인디플러스, 서울 성북구에서 운영하는 아리랑시네센터, 한국영상자료원이 운영 중인 시네마테크 KOFA 2관, 그리고 26일 대구에서 독립영화전용관인 오오극장이 문을 열면서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전용관이 생겼다.

독립영화협회는 현재 부산, 울산, 충북 청주 등지에서도 독립영화전용관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전한다. 하지만 이는 오롯이 민간의 몫으로 이뤄지고 있을 뿐 정부 지원은 요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의 마지막 날인 31일 김세훈 신임 영진위원장이 3년간의 임기에 들어갔다. 문체부도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200억 원 규모의 중・저예산 한국영화 전문투자펀드를 결성하고 예술영화 제작지원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독립영화 진영의 생존을 위한 외침을 수렴하고 종합해, 다가오는 을미년 한 해를 상생의 원년으로 빚어내는 일은 이제 정부의 몫으로 남겨진 모습이다.

무한경쟁을 좇는 시장 논리만으로 다양성이 보장될 것이라 믿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다름없다. 특히나 '갑'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해 있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약자를 위한 정책적 지원이 무엇보다 절실해 보인다.

그것이 약육강식 논리를 벗어나려 몸부림쳐 온 인류가 국가를 만들어낸 이유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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