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다. 우리나라 원전은 해킹협박과 관계없이 위험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첫째는 원전 자체의 안전 문제이고, 둘째는 원자력이라는 에너지에 국가 운명을 걸고 있는 정책의 위기이다. 하나 더 추가한다면 원전의 위험을 우리만은 피해 갈 수 있다며 안전무사를 외치고 있는 정부당국과 한수원의 무능함이다.
일단 크리스마스에 문제가 된 원전 설계 해킹부터 살펴보자. 다음에 소개하는 기사는 석 달 전 ‘뉴스타파’가 “2014 원전묵시록”이라는 특집시리즈를 보도하면서 전했던 내용이다.
"말로는 최고의 보안시설을 갖췄다지만 마음만 먹으면 원전 설계도까지 꺼낼 수 있다. 핵발전소는 국가 최고 보안시설인데 정규직원들의 업무용 컴퓨터 접근 정보가 공유되고 있어 용역업체 직원들도 마음만 먹으면 대외비는 물론 1급 보안 정보인 핵발전소 설계도면에까지 접근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아무데서라도 전국 핵발전소 23기 모두에 대한 설계도면 열람이 가능하다. 또 설비, 자재 등 핵발전소 운영 및 유지와 관련된 정보, 그리고 한수원 본부 내 각종 대외비 정보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언론 지적 무시하더니 해커 경고는 믿나?
방송이 석 달 전이었으니 취재를 위해 한수원 관계자들을 만나 따져 물은 건 넉 달 전인 9월이다. 한수원과 산업통상자원부가 넉 달 동안 무얼 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올해 마지막 국무회의가 되어서야 사이버 안보 차원에서 원전 안전을 점검하라고 지시한 것이나 해커의 협박이 계속되다 12월 25일 성탄절에 정부가 긴급 사이버안보회의를 개최한 것은 참으로 당혹스럽다.
언론의 지적과 충고에 따라 사전에 긴급점검을 실시하고 대비책을 세워두었다가 국민을 안심시키는 것이 옳지 해커의 협박에 이르러서야 대책회의를 여는 것은 말이 아니 된다.
다음 살펴 볼 일은 보안은 허술했지만 원전의 안전관리는 무사한 걸까? 뉴스타파의 <2014 원전묵시록 시리즈>에는 원전 사고 은폐 및 비공개 사례들이 폭로돼 있다. 최근의 가장 큰 사고인 2012년 2월, 고리 핵발전소 1호기에서 일어난 12분 동안의 ‘블랙아웃’사고 은폐가 대표적 사례다.
냉각수 작동이 멈춰 자칫 핵연료가 녹는 중대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험이었지만 한수원은 운행일지를 정상인 것처럼 꾸미는 등 사고 발생 사실을 철저히 감춘 것으로 알려졌다.
어떻게 이런 무책임한 일이 벌어지는지도 살펴보자. “핵피아, 그들만의 잔칫상 … 20조 원전 산업”이라는 보도 내용을 보면 국민의 안전을 담보로 한 거대한 원전 산업은 이른바 ‘핵피아’로 불리는 소수의 이권집단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그래서 그 폐쇄성과 비밀주의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원전을 운영하는 이들은 한전·한수원과 특수 관계이거나 또는 전직 간부이다. 이러한 특수 관계로 인해 부패의 가능성이 크고 감시와 견제장치가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니 30년 설계 수명이 끝난 월성 1호기를 폐기하지 않고 수명을 늘리려 하면서도 그 근거인 보고서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 국민은 이 보고서도 해커가 공개해 주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걸까?
◇거짓과 지배의 원전 정책
원전은 가장 민주적인 에너지이다. 사고가 터지면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집어 삼킨다. 해당 지역 전체가 통째로 생지옥으로 변할 수 있다. 이 위기는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관리를 잘 해도 원전은 낡고 부실해지면서 위험요인이 커진다. 그래도 관계당국은 비용을 내세워 최대한 오래 사용하려 할 것이니 위험 직전까지는 가야하는 게 원전이다.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도 한반도는 안전하다는 말로 보장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근무자의 비위나 실수, 해커의 공격도 완벽히 예방할 수 있다고 보장 못한다. 원전은 늘 위험하고 더 위험한 쪽으로 가고 있다.
유럽에서 원전을 가장 강하게 밀어붙이던 프랑스도 최근 원전에 75%까지 의존하던 에너지 정책에서 원전의존율을 2025년까지 50%로 낮추기로 했다. 대신 신재생 에너지 등 대안에너지 비중을 늘려간다. 참사가 빚어진 후쿠시마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인 우리나라만 원전 의존율을 높이려 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이어가며 원전 확대정책은 계속 진행 중이다. 전체 발전설비 가운데 원전의 비중을 현재의 26.4%에서 2035년에는 29% 수준으로 끌어 올리려 한다. 그러려면 원전은 40기 이상이 되어야 한다. 현재 원전 23기, 건설 중인 것이 5기, 이후에 짓기로 한 6기. 그리고 나서 추가로 7~8기 정도는 더 지어야 한다.
이렇게 원전을 추가하며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 나라의 핵피아는 훨씬 더 거대하고 공고해져 있을 것이다. 그 때 다시 원전의 문제가 제기되어도 지금보다 더 강한 응집력으로 비판과 개선책을 거부하며 덮고 가려 할 공산이 크다. 이후에 지금보다 더 올바르게 판단하고 제대로 된 에너지 정책이 세워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단 하나의 가능성이 있다면 원전 사고로 온 국민이 충격을 받는 것인데 이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과거 일본은 태양열 에너지 개발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의 거대 원자력 기업들이 담합해 힘을 쓰면서 재생가능 에너지에 투입될 예산들이 원전으로 돌려졌고 일본의 원전 엘리트 관료집단이 형성되었다. 당시에 사용된 명분은 우리의 지금과 흡사하다.
효율성 높은 원전 에너지를 확대하기 위해 원자로 9기를 추가 건설해야 하고 글로벌 원자력수출산업으로 경제부흥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었다. 1991년 미하마 원자로 누출사고, 1997년 도카이무라 원전 화재와 폭발 사고, 2004년 미하마에서의 2차 원전 증기 폭발사고 등 원전의 위험은 여러 징조를 내보였지만 전력회사는 허위 안전감사로 이 사고들을 덮었고 원전 안전에 대한 홍보비를 늘리며 국민의 눈을 가렸다.
그리고 몇 년 뒤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참사로 일본은 그 대가를 치렀다. 지금 우리의 원전 정책의 진행은 일본이 밟은 궤적 그대로 쫓아가고 있다. 결국 그 비극마저 쫓아 하게 될 것인데 이를 외면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지금의 원전 문제는 효율성과 안전관리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정치권력과 금권의 문제이며 국민 기만과 지배의 문제임을 고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