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건설이나 운영과 관련된 핵심 기술이 유출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원전 관리에 필수 요소인 정보 보안망에 구멍이 뚫린 이상 우리나라 원전 기술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도에 손상은 불가피해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원전 제어망이 사내 업무망이나 사외 인터넷망과 완전히 분리돼 있어 사이버 공격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원전의 안전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아직 유출된 자료의 규모와 유출 경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원전 시설의 안전을 속단하기는 이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장은 22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보안망이 허술하게 뚫린 한국형 원전을 누가 쉽게 믿고 도입하려 하겠냐"며 "특히 유출된 도면과 정보는 앞으로 한국형 원전을 사이버 공격의 표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게다가 해외의 경우 실제로 사이버 공격에 의해 원전이 물리적인 타격을 입었던 사례도 있다.
이란 원전은 2010년 해킹으로 핵심 장비인 원심분리기가 파괴되면서 가동이 중단되는 피해를 입었다.
우리나라는 1959년 미국의 지원으로 원자력 기술개발을 시작한 지 50년 만인 2009년 요르단에서 1천400MW 규모의 연구용 원전 건설 사업을 수주하면서 원전 수출을 시작했다.
이후 태국, 말레이시아에서도 연구용 원자로 구축 사업을 수주했으며, 아랍에미리트(UAE), 터키, 아르헨티나, 베트남 등과 원전 협력 관계를 맺고 사업을 추진 중이다.
지난달에는 한국원자력연구원 컨소시엄이 네덜란드의 델프트 공대에서 운영하는 연구용 원자로 개조하고 냉중성자 연구설비를 구축하는 1천900만유로(250억원) 규모의 사업을 수주해 원전의 유럽시장에까지 진출했다.
세계 원전 시장은 전통적인 원자력 강국인 미국, 프랑스, 캐나다에 러시아, 일본 등이 가세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으며, 최근 중국까지 원전 수출에 본격적인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원전의 관리를 책임진 한국수력원자력의 자료 유출 사건이 장기화될 경우 자칫 우리나라 원전 기술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번 사건은 한수원이 지난해 발생한 원전 비리 사건과 원전 가동 중단 사태로 신뢰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가운데 발생해 파장이 더 클 수 있다는 것이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원전 보안도 중요한 문제지만 원전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는 게 더 큰 문제"라며 "각종 원전 비리에 정보 유출까지 겹쳐 한국 원전 기술에 대한 신뢰도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