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TV는 상용화된지 6년도 채 안 돼 가입자 1,000만 명을 넘어섰다. 국민 5명 가운데 1명꼴로 IPTV를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유료방송으로서 상업적 이윤 추구를 위해 시작된 IPTV는 그 확장된 영향력으로 봤을 때, 자의든 타의든 문화 다양성의 활로 찾기라는 중책을 떠안게 된 모습이다. IPTV가 현재 이러한 역할을 건전하게 수행하고 있는지 짚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에 따르면 IPTV 가입자는 지난 8월 1,000만 명을 기록했다. 2009년 1월 서비스 상용화에 들어간지 5년 8개월 만의 일이다. 상용화 3년 4개월째인 2012년 4월 가입자 500만 명을 넘긴 뒤, 그 수치를 두 배로 늘리는 데 무려 1년이나 단축한 것이다.
협회는 "IPTV가 VOD(주문형 비디오) 서비스의 대중화를 가져오면서 합법적으로 콘텐츠를 이용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왔다"며 "최근에는 IPTV 유통을 겨냥한 영화, 애니메이션 등이 속속 나오고 있어 새로운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 측도 이러한 IPTV 시장의 가파른 성장세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CJ CGV 조성진 홍보팀장은 "플랫폼 사업자인 우리 입장에서 볼 때 IPTV는 아직까지 부가판권을 다루는 별개의 시장으로 여겨지는 면이 크다"면서도 "최근 극장과 동시 개봉하는 영화, 미개봉 작품을 IPTV에서 적잖게 소개하는 식으로 플랫폼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는데, 그 흐름에 신경을 쓰고는 있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멀티플렉스가 활성화되면서 관객의 극장 접근성이 다른 나라에 비해 특별히 높다"며 "이 점에서 확실한 차별점이 있는 만큼, 관객이 꾸준히 극장을 찾을 수 있도록 전국 CGV 지점이 각 지역별 특색에 맞는 문화 공간으로 자리잡게끔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무너졌던 영화 부가판권 시장 재건한 IPTV
특히나 극장이 없는 지역에서 IPTV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라 해도 무방해 보인다.
독립영화 전문 배급사 인디플러그의 김정석 대표는 "지금의 영화 부가판권 시장은 디지털 온라인 시장이라 불리는데, 지역의 디지털 케이블TV 가입자에게 VOD를 제공하는 홈초이스와 3대 통신사에서 운영하는 IPTV가 디지털 온라인 시장 매출의 70%를 차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안정된 영화 부가판권 시장으로서 IPTV가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으며, 그 영향력도 분명히 확대되고 있다는 말이다.
다큐멘터리 전문 배급사 시네마달의 김일권 대표도 "이미 IPTV 시장의 영향력이 예전 오프라인 비디오 대여시장 만큼 올라간 것으로 안다"며 "영화진흥위원회에서 IPTV만 별도로 온라인 전산망을 꾸려 통계치를 내고 있는 것에서도 그 영향력을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IPTV는 극장을 제외하고는 영화의 부가판권 시장으로는 제일 큰데, 우리나라는 영화 콘텐츠의 전체 수익 가운데 극장 수익이 70%가량을 차지한다"며 "이는 보통 극장 수익이 30~40%에 머무는 해외에 비해 기형적으로 높다"고 지적했다.
예전 오프라인 비디오 대여 시장이 사라진 데다. 케이블·지상파 TV 시장도 맥을 못 추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극장의 힘이 세진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온라인에서 P2P 통신망이 퍼지면서 극장 개봉 이후 영화들은 소위 어둠의 경로로 풀려 수익을 얻기가 몹시 어려웠다"며 "IPTV가 정착되면서 이러한 점이 많이 개선됐고, 그로 인해 온라인 시장이 커진 긍정적 효과를 낳았다"고 했다.
◈ 막강한 영향력…뒤따르는 문화 다양성 책임
인디플러그 김정석 대표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IPTV가 수천 편의 영화 콘텐츠를 갖고 있지만, TV를 켰을 때 노출되는 상품이 제한돼 있다보니 선택지는 최대 20여 편을 상영하는 극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지상파에서조차 영화를 틀어 주는 프로그램이 사라진 요즘, IPTV는 대중들이 영화 콘텐츠를 소비하는 패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문제는 IPTV 운영 방식이, 흥행할 법한 영화에 스크린을 몰아 주는 멀티플렉스 극장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개선하려면 쿼터제, 그러니까 작은 영화들을 일정 부분 방영하도록 하는 할당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 김 대표의 견해다.
그에 따르면 방송발전기금과 영화발전기금이 따로 운영되는 우리나라와 달리, 프랑스에서는 방송발전기금이 다양한 영화의 발전에도 기여하도록 쓰인다. TV에서는 이러한 할당제에 따라 자국영화나 예술영화를 의무적으로 상영한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할당제가 지상파에 적용되고 있지만 애니메이션에만 국한돼 있다. 사실 방송자 입장에서는 프로그램 앞뒤로 광고가 잘 붙는 콘텐츠를 틀지 않겠냐"며 "이를 깨려면 할당제를 도입해서 독립영화 같은 다양한 영화가 노출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특히 "사업자가 막대한 수익을 거둔다면 어떠한 힘으로든 그 가운데 10% 정도는 시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상식"이라며 "극장이나 IPTV의 상업적 측면을 부정하자는 게 아니라, 다양한 문화 향유를 위해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것들을 밑바탕에 두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흥행작 노출 목매…"자본 통념 버린 인식전환 절실"
김 대표는 "멀티플렉스의 독과점 문제와 비슷하게 IPTV에서도 규모 큰 상업 영화의 홍보에 열을 올린다"며 "잘 팔리는 영화 중심으로 작품을 고르도록 강제하는 선택권 제한은 독립영화와 같은 작은 영화에 대한 또 다른 차별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 "사실 한국영화 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작은 영화가 재생산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점"이라며 "독립영화는 개봉관이 극히 적기 때문에 부가판권 시장에서 어느 정도 수익을 내야만 다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역설했다.
결국 할당제나 예술영화 전용 채널 도입 등 작은 영화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의 도입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IPTV가 작은 영화에게 돌파구가 돼야 하는 것은 맞는 말이다. 일본이나 미국처럼 B급 영화의 수익모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현재로서는 IPTV용 영화라고 제작되는 것 대부분이 소위 에로영화 장르로 편향됐다는 점에서, 재생산이 가능한 영화 역시 에로영화 밖에는 없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예를 들어 케이블 채널에서 대박이 나는 드라마를 보면 지상파에서 거부한 기획이나 아이템이 대다수"라며 "자본의 통념으로는 시장성이 없다고 하는 것들이 오히려 대중에게 먹히는 것인데, IPTV 안에서도 이런 차원에서의 인식 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