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
① 정부가 무섭다는 'D의 공포'…쓸 돈도 없는데 웬 물가걱정? ② 빚 위에 선 가계경제…"더 이상 줄일 데가 없다" ③ "정부 못 믿는다"…'생존경제' 나서는 사람들 |
일본이 불황을 거치면서 젊은층의 저축률이 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불황이 시작되던 1990년과 현 시점인 2013년 자료를 비교해보면, 저축률이 줄어든 노인층과는 달리 20~30대의 저축률은 오히려 높아졌다. 일본의 20대 저축률은 1990년 24%이던 것이 2013년 35.1%까지 늘어난다.
스스로 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은 한국 가계도 마찬가지다. 개인들이 본격적으로 지출을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2003년 한국은행의 '기타가계대출'항목 통계 집계 이후 마이너스 통장 잔액이 올해 처음 감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7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경제활성화'가 시동을 걸면서 방향이 다시 바뀌었다. 이렇게 생긴 대출이 소비로 연결되지 않는 것을 보면, 일반 가계의 '빚내기'는 한계 상황 가까이로 내몰린 가구들이 숨통을 찾은 것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의 50% 이상이 원래 용도인 주택구입에 쓰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가미래연구원이 여론조사기관 베스트사이트에 의뢰해 20~49세 청장년층을 대상으로 실시한 최근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9.9%가 '최경환 경제팀의 경제정책이 내수 활성화에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정체된 임금상승률과 오르는 생활물가라는 조건 속에서 '소득 내 소비'에 대한 고민도 함께 깊어지는 분위기다. 일종의 '불황형 재무조정'이다. 최정표 건국대 경제학 교수는 "서민 층은 소득 내에서 소비할 수 있는게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알뜰살뜰 살수밖에 없다"면서 최근 유행처럼 번진 해외직구도 일종의 '소득 내 소비'라고 설명했다. 돌을 갓 넘긴 자녀를 둔 유지은(33) 씨는 "아이 용품 같은 경우는 특히나 직구를 이용하는 게 훨씬 싸다"며 "번거롭기는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예산 안에서 살림을 꾸리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보육을 포함한 자녀 양육 문제나 은퇴 이후 노년 생활과 관련해서도 정부정책이나 사회안전망에 기대하는 목소리는 찾기 어렵다. 경제생활과 관련된 전 영역에서 정부나 정당 등 시스템을 통한 '집단적 해결' 대신 살아남기 위한 '각자도생'만 남은 셈이다. 서점가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읽을 수가 있는데, '생존 경제', '생존 교과서', '재난시대 생존법', '생존의 밥상', '을의 생존법' 까지 단어 그대로 '생존'을 다룬 책들이 넘쳐난다.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김호균 교수는 "금리 인하를 통한 기업 투자 촉진으로 경제 활성화를 꾀했지만 실패한 상황에서, 정부에게 남은 마지막 카드는 소비 진작을 통한 내수 활성화"라며 "소비를 좌우하는 것은 실질소득이기 때문에 서민이 쓸 수 있는 돈, 임금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내수 활성화도 힘들다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김호균 교수는 "일본 정부가 잃어버린 20년을 끝내기 위해 전 국민에게 현금까지 나눠줬지만 오랜 불황을 경험한 일본 국민들이 미래 경제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를 사용하기보다 저축했던 점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며 "경기 활성화를 위한 소득증대정책을 시급하게 시행해야지, 쓸 돈이 부족한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는 국민들의 인식을 바꾸지 못하면 일본과 같은 장기불황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